“새우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대하 드라마! 새우가 대하니까. 왜 안 웃어? 대하 먹어본 적 없어?”
안 웃기는요. 쓰러지며 웃었다. ‘아재씨’라는 TV 개그 코너였다. 답이 썰렁한 만큼, ‘난닝구’와 발가락 양말 차림의 ‘아재 악령’이 ‘아재 개그’로 세상을 얼리지 못하게 젊은 퇴마사들이 나선다는 설정은 따끈했다. 최근의 ‘아재 현상’을 풍자한 개그였다. 아저씨를 낮춰 부르는 ‘아재’가 권위적인 기성세대를 희화화하는 말로 쓰이면서 약해 보이는 이에게 던지는 무례한 반말투를 ‘아재체’, 유치한 동음이의어식 말장난은 ‘아재 개그’라 한다. ‘전화기로 세운 건물은 콜로세움’ ‘고양이를 미워하는 고양이는 미어캣’ ‘과자가 자기소개를 하면 전과자’라는 식이다. 셰프 오세득 씨는 ‘한 손으로 넣으면 염(소금)이고 양손으로 넣으면 양념’류의 아재 멘트로 먼저 유명해졌다.
아재 개그는 흔히 ‘주목!’이라는 명령으로 시작한다. 개그가 나와야 하는 바로 그 순간, 기억력을 탓하는 말과 프롬프터 역할의 휴대전화가 나오고, 웃어야 하는 이유까지 들어야 하는 ‘훈시’에 가깝다. 박장대소냐 싸늘한 조소냐에 의해 부하 직원 중 아재의 ‘진실한 사람’이 즉시 감별된다.
아재보다 비하와 조롱의 정도가 심한 말로 ‘개저씨’가 있다. ‘개념 없는 아저씨’의 줄임말이란 해석과 멍멍이와 아저씨를 더한 신조어란 설이 있다. 최근 ‘개저씨’를 소재로 다룬 한 시사 프로그램은 전형적 인물로 ‘미생’의 마 부장을 등장시켰다. 극 중 마 부장은 48세. 부하 직원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며, 문제는 ‘요즘 애들’에게 있을 뿐이며 성희롱이 ‘딸 같아서’란 말로 양해된다고 생각하는, 어쩌면 ‘대개 아저씨’다.
문화이론지 ‘문화과학’ 봄호에는 ‘개저씨 문학’이 등장한다. 문화연구자 오혜진은 한국 문학계의 주류 권력과 비평 정신의 회복을 주장하는 비판론자 양 진영을 똑같은 문화패권주의라 규정하고, 21세기 독자들이 이 같은 ‘개저씨 문학’에 냉담하리라 예언한다.
개그에서 비평에 이르기까지 ‘참을 수 없는 개저씨의 진지함’이 이렇게 조롱을 받는 건, 시대적 맥락과 공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거나 부정한다. 수첩 속 개그는 더 이상 개그가 아니고, 제단 위의 문학은 삶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사실 ‘아재’는 예전에 ‘부장님’이었고 꼰대 개그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따라서 ‘부장님=아재 개그’의 원조는 중년 남성이지만 요즘은 성과 무관한 경우를 많이 본다. 즉, 부장님 개그란 권력을 남용하는 갑질 개그로서 종종 사회적 약자를 비웃는,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내용으로 파국에 이른다. 관객의 웃음은 벌거벗은 임금님에 대한 조건반사적 두려움이다. 반면 아재 개그는 부장님, 꼰대, 개저씨에 대한 조소, 권력자의 자기 연민과 불안에 대한 풍자다. 21세기 관객으로부터 외면받는 아저씨, 아재. 그의 자리는 남성 주류 권력자의 반대편, 여성, 신입사원, 실직자 옆이다. 부장님 개그와 달리 아재 개그가 젊은층에서 싸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그 덕분에 좋은 소식도 있다. 오랫동안 회식 자리에 찬물을 끼얹어 왔던 부장님 개그가 요즘 최첨단 아재 개그로 진짜 환영받는다는 것이다. 내용이 썰렁할수록 반응은 폭발적이다. 아재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시라. 단, 이 정도 개그는 다 외워서 ‘쳐’ 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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