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노지현] “혐오를 멈춰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4일 03시 00분


노지현 사회부 기자
노지현 사회부 기자
지난달 30일 서울대에서 열린 기독교수협의회 수요열린예배에는 ‘드래그 퀸’이라고 불리는 여장 남자 두 명이 무대 앞을 왔다 갔다 했다. 앞에 앉은 서울대 동성애자 동아리 큐이즈 회원 20여 명은 ‘혐오를 멈춰 주세요’, ‘혐오하는 당신 마음 못생겼습니다’와 같은 피켓을 흔들었다. 시위자들은 예배 도중 야유하는 소리를 계속 내기도 했다.

이날 동성애자들이 예배에서 시위를 벌인 이유는 염안섭 수동연세요양병원장(42) 때문. 의사이면서 목사이기도 한 염 원장은 임상으로 본 에이즈 문제에 대해 예배에서 이야기할 예정이었다. 동성애자 동아리 큐이즈는 염 원장이 그동안 성소수자들을 혐오하는 발언을 했다며 강의 자체를 반대했다. 시위에는 서울대에서 최초로 자신을 동성애자로 밝힌 김보미 총학생회장(23)도 참여했다. 김 씨는 최근 열린 제58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해 86.8%의 찬성표를 얻어 당선됐다.

김보미 총학생회장과 동아리 회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염 원장은 혐오 발언을 했을까. 염 원장은 “그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를 내가 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염 원장이 처음 동성애자 문제를 접하게 된 것은 2009년 요양병원에 남자 에이즈 환자를 받으면서부터였다. 다른 병원들은 “병원에 에이즈 환자가 있다는 소문이 나는 것만으로도 망한다”며 거부할 때였다. 가족이나 친지의 도움을 못 받던 에이즈 환자들이 마지막 요양을 그에게 맡겼다. 많을 때는 환자 60명이 동시에 요양을 했다. 환자에 따라 요양 일수가 다르긴 하지만 ‘24시간 상주’를 1회로 치면 치료 횟수는 7만 회가 넘는다. 그는 “에이즈 환자는 대다수 동성애를 통해 병을 얻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동성애의 위험을 알리는 동영상 강연을 보고 20대 남자 동성애자들로부터 “동성애를 그만두고 싶다”는 상담도 계속 들어왔다. 염 원장은 “게이 포르노를 접하고 잘못된 선택을 한 경우가 대부분일 뿐 유전적이거나 선천적인 사람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그가 이런 상담역할에 나선 뒤 염 원장과 가족 전화번호로 협박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다수가 소수를 차별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요즘 과연 차별이라는 것이 있는가. 개인 생각의 다름이 있을 뿐 눈에 보이는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은 없다. 서울 시내에서 동성애자 퀴어 축제도 하고 있지 않은가.

2000년대 이후 대학가는 달라졌다. ‘민주화 투쟁’이나 ‘농민 다 죽이는 우루과이라운드 그만두라’ ‘세계화 반대’와 같은 거대 담론 속에서 살던 30, 40대에는 김 총학생회장의 당선이 가져올 대학가 변화가 궁금하고 기대됐다.

김 씨는 총학생회장 당선 때 “성 소수자 등을 이해할 수 있는 학생 사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염 원장은 서울대 총학생회 측에 공개 토론을 하자며 지난달 31일 요청서를 보냈지만 아직 답변이 오지 않았다. 소수자를 위하겠다는 포부가 단지 다른 사람의 입을 막겠다는 뜻이었다면 실망스럽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
#드래그 퀸#동성애자#성 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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