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전홍섭]마음 고향으로 고착된 지명, 지자체 마음대로 변경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6일 03시 00분


전홍섭 교육칼럼니스트
전홍섭 교육칼럼니스트
지명은 인명과 더불어 대표적인 고유명사이다. 우리의 삶과도 밀착돼 있다.

그런데 최근 상당수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오래 사용해 오던 읍·면 단위 행정지명을 변경하고 있다. 물론 해당 지역을 더 잘 알리고 지역민이 원한다면 절차에 따라 못할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이유가 편협한 지역주의에 편승하거나 상업적 명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면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제정된 한자어 지명이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고, 단순한 방위적 개념으로 되어 있어 지역적 특성을 함축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강원 영월군은 하동면을 김삿갓면, 서면을 한반도면으로, 경기 광주시는 중부면을 남한산성면으로, 경북 울진군은 원남면과 서면을 각각 매화면과 금강송면으로 면 단위 행정지명을 바꿨다. 그 밖에도 경북 포항시 대보면은 호미곶면으로, 경북 고령군 고령읍은 대가야읍으로 변경했다. 이들 면에는 조선시대 풍류시인 김병연의 유적지가 있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 등이 있다. 또 지역적인 인물과 문화재, 특산물이나 군화(郡花)가 지명에 들어갔다. 이 같은 요소가 지명에 대한 인지도를 더 높일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경남 함양군은 마천면을 지리산면으로, 경북 영주시는 단산면을 소백산면으로 변경하려다가 이웃 지자체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행정자치부 중앙분쟁조정위원회의 중재에 따라 명칭 변경이 중단된 곳도 있다. 경기 여주시 능서면은 세종대왕면으로 변경하기 위해 주민 의견수렴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은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이처럼 지역의 특성과 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현재의 행정지명을 산이나 강 또는 지형 등의 고유 명칭과 인물이나 특산물, 문화재 등의 이름으로 대체한다면 전국에서 지명 변경을 하지 않을 곳이 없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지하철과 철도역명, 도로와 교량 명칭을 두고도 지자체 간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아전인수(我田引水)적인 지역주의로 지명과 시설물 명칭을 제정한다면 우리나라의 지명체계에 혼란이 올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도로명 주소체계가 흔들리고 있는데 주민생활에 더 많은 불편을 끼칠 수도 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고향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지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로 고유명사로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외부 방문객들도 행정지명이 바뀌면 길 찾는 데 많은 혼란을 겪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명 변경에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의 필요에서만 지명을 바꾼다면 후손들이 또 바꿔야 하는 부담을 질 수도 있다.

전홍섭 교육칼럼니스트
#지명#행정지명#강원 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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