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오전 8시경 등교를 위해 서울 동작구청 앞 건널목에 서 있던 서울 노량진초등학교 학생들의 귓가엔 곡소리와 장송곡이 울려 퍼졌다. 지난해 8월부터 사당1구역 재건축 비대위가 진행 중인 ‘이주 대책 마련’ 집회 현장에서 흘러나온 노래였다. 이들은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상복을 입고 나와 장송곡을 틀고 이주 대책을 마련하라고 구청을 향해 외치고 있다. 비대위 측은 “죽어도 구청 앞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매일 상복을 입고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8개월간 집회가 이어지면서 엉뚱하게 구청 맞은편에 있는 노량진초교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요즘 학생들의 최고 유행어가 “아이고”가 됐다. 특히 집회 현장에서 하루 종일 스피커를 켜고 외치고 있어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도 “이주 보상을 마련하라”는 구호를 들으며 공부한다. 학교 관계자는 “문구가 선정적이고 학생들이 노래와 춤을 따라 춰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동작구 측은 비대위의 요구가 터무니없고 주민들 피해만 키워 답답하다는 반응이다. 동작구 관계자는 “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조합과의 중재 역할 등이 전부인데 비대위에서 보상비를 높여 달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고 있다”며 “매일 아침 장송곡을 들으면서 출근하고 일하는 내내 곡소리를 들어야 하는 구청 직원 모두가 미칠 지경”이라고 말했다. 구청 주변의 초등학교와 노량진 고시학원, 상인들로부터 집회 소음으로 인해 접수된 민원만 100여 건에 달한다. 동작구는 4일 서울중앙지법에 이들의 집회를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자신들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집회가 이젠 흔한 풍경이 됐다.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서여의도영업부 앞에서는 지난달 7일부터 전국공무원노조의 ‘성과급제 폐지 농성’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역시 KB와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국회와 가깝다는 이유로 집회 장소가 됐다. KB국민은행 측은 “집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좋게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관할 경찰서에 미리 신고를 하는 등 시위의 요건을 갖춘 집회는 제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원의 판례에서도 집회 해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나와 있지 않다. 경찰도 규제할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입장이다. 2014년 강화된 집시법 시행령으로 주거지와 학교 주변일 경우 낮에는 65dB(데시벨), 야간에는 60dB이 넘는 소음을 발생시키면 처벌 대상이 된다. 광장과 상가에서는 주간 75dB, 야간 65dB이 기준이다. 서울 동작경찰서 관계자는 “소음 기준에 조금 못 미칠 정도로 집회를 이어가는 등의 교묘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집회를 강제 해산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집시법에 집회 수단이나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들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다른 시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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