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여성 초혼 30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9일 03시 00분


공자가 말하길, 30세를 이립(而立)이라 했다. 학문의 기초를 닦아 자립한다는 의미다. 현대 시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시기로 본다. ‘그 자신은 일신상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해간다.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서른 살은 온다.’(최승자의 ‘삼십세’)

▷여성의 평균 초혼(初婚)연령이 통계 작성 이후 처음 30세를 넘어섰다. 그제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혼인·이혼통계’에서 평균 초혼연령은 남자 32.6세, 여자 30.0세다. 통계를 시작한 1990년에는 남성 27.8세, 여성 24.8세였다. 그때만 해도 서른 넘긴 미혼 여성에게 ‘노처녀’ 딱지를 붙였다. 2000년대 닷컴 붐이 일자 벤처기업에 근무하며 자사주까지 확보한 미혼 여성은 ‘골드 미스’로 승격했다.

▷여성 초혼연령이 높아지면서 출산 시기를 놓친다는 우려가 나온다. 과연 그럴까? 합계출산율(여성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로 따지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꼴찌다. 하지만 저출산 국가를 넘어서 초저출산 국가(합계출산율 1.3명 미만)에 들어선 것이 2001년이었다.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 같은 유럽에선 여성 초혼연령이 이미 30세를 넘겼는데도 출산율은 2명에 근접한다. 여성 취업과 보육지원제도, 혼전 동거와 출산에 대한 편견 없는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덕이다.

▷“여자 나이 서른에 좋은 남자를 만나기란 길을 걷다 원자폭탄을 맞는 것보다 더 어렵다.” 독일 영화 ‘파니핑크’에 나오는 29세 여주인공의 대사다. 이제 연애와 결혼의 성공 확률을 나이만으로 따질 때는 지난 것 같다. 삶의 가치관이 확고하다면 서른 즈음, 아니면 서른을 넘긴 것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그렇긴 해도 만혼과 고령 임신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초혼연령이 낮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꼭 딸 가진 부모의 마음만은 아닐 것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30세#이립#여성 평균 초혼 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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