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살균제 제조판매업체 옥시레킷벤키저가 2011년 자체 의뢰한 독성 실험 가운데 “가습기 살균제 성분과 피해자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국내 유력 기관의 실험 결과를 은폐한 단서가 검찰에 포착됐다. 검찰은 옥시 내부에서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한 자료 상당수가 삭제되거나 파기된 배경을 수사 중인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옥시 측이 실험을 의뢰한 곳 가운데 기존에 알려진 서울대와 호서대 외에 다른 곳이 추가로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 기관은 엄격한 우수실험실 운영규정을 통과한 실험실에 부여하는 GLP(Good Laboratory Practice) 인증을 받은 곳으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와 영유아 및 임산부 사망의 원인이 된 폐섬유화 사이에 인과관계가 도출된다”는 결론을 옥시 측에 전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2월과 지난달 극비리에 압수수색을 하면서 해당 실험 결과 원본을 확보했다. 검찰은 특히 자료 보관자 등에게서 “옥시 측에서 이를 가지고 있으라고 해서 보관해 왔다”는 취지의 진술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옥시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정한 보고서를 검찰에 내지 않은 반면 PHMG와 피해자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서울대와 호서대 측 실험 보고서는 유력 법무법인의 검토까지 거쳐 제출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인체 유해성을 시사한 2011년, 2012년 실험 결과 발표를 반박하려는 취지였다.
검찰은 PHMG로 성분이 변경된 가습기 살균제를 옥시가 처음 출시할 당시에 흡입독성 실험이 이뤄지지 않은 점에 비춰 불리한 실험 결과에 애써 눈감고 인과관계를 부인하기 위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특히 옥시 측이 “살균제와 사망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실험 보고서는 숨겨둔 채 피해자들과 개별 접촉해 합의를 이끌어 왔다는 점을 근거로 현행법 위반 여부도 살펴보고 있다.
검찰은 수사 초기 해당 보고서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이후 자료 분석에서 옥시가 공개하지 않은 보고서가 있다는 단서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옥시 내부 컴퓨터나 보고서 등에는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된 내부 자료가 거의 없었는데, 검찰이 신현우 전 옥시 대표이사의 자택과 사무실까지 광범위하게 압수수색을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검찰은 옥시 측이 수사에 대비해 불리한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정황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한편 검찰은 출국금지한 옥시 등 기업체 관계자들을 다음 주부터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가습기 살균제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낸 호서대 Y 교수에게는 출석을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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