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약보다 중요한 ‘의사에 대한 믿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2일 03시 00분


[부산힘찬병원의 착한 의료이야기]정용욱 진료부장

정용욱 진료부장
정용욱 진료부장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자주 등장한 말이 ‘병원 쇼핑’이다. 한 가지 질병을 놓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는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의료 자원 낭비는 물론이고 치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로 여러 병의원을 드나들던 한 메르스 환자는 마지막에 대형 병원을 방문해 전염 위험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병원을 다니는 것은 금물이지만 경험이 많은 다른 전문의의 2차 의견(세컨드 오피니언)을 받아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10여 년 전 지인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복강 내 낭종’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고민하고 있던 차에 나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진료 병원에서 개복수술을 하자고 하는데 너무 걱정이라고 했다. 나는 그때 다른 의료진에게 2차 의견을 들어보라고 했다. 그 사람은 다른 의료진의 이야기를 포함해 두 수술법의 장단점을 비교해본 뒤 수술을 결정했다.

우리 병원에서는 주기적으로 의료진들이 회의를 열어 수술에 대한 생각을 공유한다. 치료 방법의 선택에서 어떤 수술을 하는 것이 좋을지, 수술 이외의 다른 치료법이 없는지, 결과는 어떨지 등을 놓고 고민하는 일종의 2차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다. 좀 더 신중한 결정을 위해 서로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척추나 관절 치료는 비슷한 통증이 있는 환자라도 진단이 다를 수 있고 치료법도 다르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깨 통증을 호소한 환자는 검사 결과 회전근개(어깨힘줄)가 파열돼 있었다. 환자 말로는 잘한다는 병원을 모두 다녀봤는데 진단도, 치료법도 달랐다고 한다. 다섯 번째로 찾은 우리 병원의 검사 결과 회전근개가 찢어져 있었다. 곧바로 관절내시경으로 끊어진 힘줄을 봉합하는 수술을 시행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봉합수술도 힘들 뻔했다. 끊어진 힘줄을 방치하면 근육의 당기는 힘에 의해 끊어진 힘줄이 말려 올라가면서 지방으로 바뀌어 봉합수술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3차, 4차 의견까지 구하는 병원 쇼핑으로 이어지면 치료 시점이 늦어져 문제가 심각해진다. 정보를 얻고 2차 의견을 수렴한 후 병원과 의료진을 선택했다면 그때부터는 신뢰가 중요하다.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그 어떤 명약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의사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메르스#병원 쇼핑#부산 힘찬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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