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경기 화성시에 사는 정모 씨(46·여)는 남편에게 4시간 동안 골프채로 폭행을 당해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관할 경찰서 경찰관에게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 막말을 들었다. 커튼 너머 다른 병상의 환자들이 모두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경찰은 심지어 “일단 아이 셋을 데리고 모텔로 가라”고 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정 씨는 “전치 3주가 나왔을 정도로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었는데 경찰의 언행과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처리로 또 한번 마음의 상처가 생겼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민 안전을 위해 반드시 척결돼야 할 ‘4대 악’ 중 하나로 가정폭력을 꼽았다. 이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경찰의 미숙한 조치로 2차 피해를 보고 있다.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가정폭력 피해자는 신고 시 경찰의 응급조치를 받는다. 하지만 가정폭력의 특수성에 비해 담당 경찰관들이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경찰 교육 과정에서 가정폭력 범죄의 대응과 관련해 별도의 체계적인 수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순경, 간부후보생, 경찰대 학생의 교육 과정에는 가정폭력 과목이 별도로 개설돼 있지 않다. 경찰대는 여성청소년과 수업에 관련 내용이 있지만 재학 4년간 수업시수는 12시간에 그친다. 경찰 관계자는 “대체로 일선 경찰서의 여성청소년계로 발령된 뒤 교육을 받는다. 지구대로 발령받은 경찰들은 현장에서 선배들에게 도제식으로 알음알음 배운다”고 말했다. 미국, 영국은 신임 경찰 교육 단계부터 가정폭력에 대한 이해를 필수 교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더욱이 외사계에서 조사를 받는 이주 여성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가정폭력 조사 방침을 제대로 교육받은 적이 없는 외사계 경찰들은 잘못된 언행을 일삼거나 사건을 미숙하게 처리하기 일쑤다. 강혜숙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센터장은 “‘외사계 경찰이 남편과 나를 함께 앉힌 채 조사했다’며 신고하는 이주 여성이 많다. 언어가 안 통한다는 이유로 가해자만 조사하는 일도 있다”고 언급했다.
부족한 인력, 미흡한 절차 때문에 유연한 대응이 어려운 측면도 있다. 가정폭력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은 현장에서 부부를 격리한다. 이후 피해자가 가해자의 접근 금지를 원한다면 긴급 임시 조치 신청서를 작성하고 판사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판사가 결정을 내리기까지 하루 정도가 걸리는데 거주지에 마땅한 보호소가 없는 피해자는 아이와 함께 경찰이 제공해 주는 모텔에서 지내는 일도 생긴다. 판사의 결정 전에는 가해자가 접근해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 피해자가 지구대에 ‘지속적인 보호 요청’을 해도 인력 부족으로 매일 거주지를 순찰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유연한 매뉴얼을 마련하고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경찰이 피해자의 눈높이에서 언행을 조심하고 사건을 처리할 수 있도록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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