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5시경 경남 사천공항. 공항청사 옆 담장 너머로 쌍발 비행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 비행기는 3년 동안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왜 멀쩡한 비행기가 날개를 접고 있는 것일까. ○ 도지사 바뀌면서 운명도 달라져
이 비행기는 캐나다 봉바르디에의 화재 진압 전용 CL-215기다. 수륙양용으로 길이 19.8m, 날개길이 28.6m. 호수나 바다, 강 등을 스치듯 지나가며 5300L의 물을 기른 뒤 재이륙할 수 있다. 10여 개국에서 300여 대가 활용되고 있다.
2012년 4월 민주당 김두관 경남지사 시절 경남도가 국내 항공기 운용사인 케이바스(대표 김종관)를 통해 들여왔다. 임차료는 120일(4, 5월 45일+11월∼다음 해 1월 75일)에 20억 원. 하루 1600여만 원으로 비싼 편이다. 당시 산불이 자주 발생한 데다 “헬기만으로는 진화에 한계가 있다”는 도의회 지적을 반영한 조치였다.
그러나 도입 한 달 뒤인 5월 6일 오후 8시 반경 경남 사천의 산불을 진화하면서 이 비행기는 남강댐에서 물을 길어오지 않았다. 그 대신 사천비행장에서 소방차를 통해 급수를 받아 논란이 됐다. 이후 양산 등지에 몇 차례 낮에 출동을 했을 뿐 야간 진화는 없었다.
김 전 경남지사가 중도 사퇴하고 2012년 12월 취임한 새누리당 홍준표 경남지사는 이듬해인 2013년 2월 5일 실국원장 회의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야간 실험도 해보지 않고 20억 원이나 되는 도민 세금을 들여 엉터리로 계약했다”며 호통을 치고 개선책을 지시했다. 그 무렵 진행되던 재계약은 없던 일이 됐다.
이 비행기는 공항사용료와 보험료, 엔진 점검 비용만 연간 2억여 원, 감가상각까지 합치면 연간 4억5000여만 원을 까먹고 있다. 김 전 경남지사의 지시로 비행기 임차를 담당했던 공무원은 징계까지 받았다.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였지만 수긍을 못하는 눈치다. ○“우리나라 여건에 안 맞다” vs “세계적으로 공인됐다”
케이바스 관계자는 17일 “경남도의 태도는 소방차를 소방차가 아니라고 우기는 격”이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미 성능이 입증됐고 산불 진화 등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도 재계약을 안 했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 간부는 “최소 3∼5년 정도 계약을 할 것으로 보고 수십억 원을 들여 캐나다에서 비행기를 들여왔다”며 “홍 지사에게 잘못된 정보가 전달돼 재계약이 무산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산불 진화를 하는 헬기 업체들이 ‘영업권 방어’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는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다.
실제 헬기로 산불 진화와 철탑 공사를 하는 경남의 대진항공(대표 정경환)은 2013년 1월 ‘야간 산불 진화용 항공기 운영 문제점’이라는 문서를 만들었다. 계곡이 많은 지형에 적합하지 않고 헬기와 동시 진화가 곤란하다는 등 8가지가 적시돼 있다. 이 문서는 경남도 정무라인에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대진항공 정 대표는 “헬기 업계의 의견을 참고해 문제가 있으니까 경남도가 재계약을 안 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산불 진화를 위해 야간에 자유롭게 뜰 수 있으면 되는데 케이바스는 그게 어려우니까 사업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논리다.
경남도 관계자도 “야간 진화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없었고 임차료도 너무 비싸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반면 권혁부 케이바스 회장은 “경남도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하지 않아 영업에 큰 차질이 생겼다”며 “전체 흐름을 보면 ‘을’의 위치인 회사 측에 억울한 면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재계약 무산 책임을 둘러싼 논란과 CL-215의 ‘능력’에 대한 공방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케이바스와 대진항공도 사업 문제로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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