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의 건강관리는 한 달에 2번 들르는 촉탁의(囑託醫)의 방문 진료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하지만 본보 취재 결과 촉탁의에 의한 처방 건수가 입소 노인의 수에 비해 지나치게 적고 진료 횟수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등 방문 진료가 매우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5년 말 기준 요양원은 약 3000개소(공동생활가정 제외). 이 중 촉탁의를 두고 있는 곳은 약 2000개소(66%)다. 총 입소 노인은 약 11만6000명에 이른다. 노인장기요양보호법에 따르면 촉탁의는 연 24회(2주에 1번) 요양원에 방문해 입소 노인을 진료해야 한다. 촉탁의를 둔 요양원 입소 노인의 수에 진료 횟수를 곱하면 2015년 최소 184만 건의 처방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실제 처방 건수는 50만 건에 불과했다.
이상희 보건복지부 요양보험운영과장은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의 연령이나 건강을 고려하면 촉탁의가 진료를 할 때마다 처방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며 “4분의 1 수준인 연 50만 건의 처방은 촉탁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지적했다.
노용균 한림대 의대 가정의학교실 교수가 2013년 촉탁의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2%가 “2주 1회의 진료를 채우지 못한다”, 47.7%는 “모든 입소 노인을 일대일로 진찰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40여 명의 노인이 입소해 있는 한 요양원 관계자는 “촉탁의가 와서 1시간여 동안 환자를 대충 훑어본 후 가는 일도 잦다”고 밝혔다.
문제는 촉탁의가 진료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요양원을 처벌하거나 정부에서 지원금을 주지 않는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없다는 점. 복지부에서 3년마다 실시하는 요양원 시설 평가에서는 촉탁의 방문 기록만 확인한다. 촉탁의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촉탁의 보수가 턱없이 낮고, 지급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촉탁의에 의한 진료 비용(월 195만 원·70인 기준)은 요양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급여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요양원은 경영상의 이유 등을 들며 월 50만 원 이내로 보수를 지급한다. 대한의사협회는 “촉탁의 수가를 분리하고 공단에 직접 청구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측은 “현장의 상황을 무시한 목소리”라고 반박한다. 한 요양원 관계자는 “실제로 요양원이 촉탁의에게 노인 환자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는데, 별도의 보수까지 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귀띔했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요양원이 촉탁의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고 보수를 적절히 지급할 수 있도록 복지부가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하며, 문제가 있으면 운영이나 급여 지급에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22일 장기요양위원회를 열고 촉탁의 제도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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