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6시 서울 금천구의 한 아파트단지. 미국 성매매 업소의 인터넷 광고를 대행해준 김모 씨(38)를 검거하기 위해 잠복근무하던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이충희 팀장과 수사관들의 마음은 초조해졌다. 평소 거의 외출을 하지 않던 김 씨는 이날 경찰이 잠복한 지 4시간이 다 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와 미국 검찰, 국토안보부, 국세청, 국무부, 우편물검역소 등 5개 정부기관으로 구성된 합동단속반은 미국 뉴욕, 뉴저지 등에서 성매매 업소를 운영한 한인 업주와 성매매 여성, 인터넷 광고업자를 붙잡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손발을 맞춰왔다. 국제범죄수사대는 한국어로 된 증거 분석을 돕기 위해 미국에 3명의 수사관을 파견하기도 했다. 한미 수사당국은 용의자들이 모바일 메신저로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동시에 검거하지 않으면 단속정보가 새어나갈 수 있어서였다. 고심 끝에 정한 합동 검거작전 시각은 이날 오후 7시(미국 시간 오전 6시)였다.
오후 6시 30분경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상 서울 마포구에 있던 김 씨가 남쪽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 방향이었다. 경찰은 2014년 3월부터 지금까지 미국 성매매 업소 29곳의 인터넷 광고를 대행해준 혐의(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김 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상태였다.
같은 시각 미국에 파견된 국제범죄수사대 소속 강지윤 경사는 미국 합동단속반과 함께 뉴저지 주에 사는 김 씨의 어머니 함모 씨(63)의 집을 수색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함 씨는 아들을 대신해 매주 성매매 업소를 돌며 1곳당 75~150달러(약 86만~172만 원)의 광고료를 수금해온 혐의였다. 강 경사는 한국 상황을 묻는 미국 합동단속반 관계자에게 “문제없다”고 답했지만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김 씨가 늦게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수개월 동안 준비한 합동 검거작전이 무산될 수도 있었다.
오후 6시 50분경 김 씨가 드디어 자신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현관 앞에서 체포된 김 씨는 처음에는 태연한 표정을 짓다가 영장 내용을 읽어주자 뒤늦게 혐의를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같은 시각 미국 합동단속반은 김 씨의 어머니인 함 씨와 성매매 한인 업주 5명, 성매매 여성 40명, 광고업자 2명 등 48명을 검거했다. 함 씨의 집에서는 성매매 업소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이는 여러 개의 돈뭉치가 발견됐다. 성매매 여성은 20, 30대 한국인으로 대다수가 90일 동안 체류할 수 있는 관광비자로 미국에 건너간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경찰이 해외 수사당국과 정보를 공유하고 현지에 수사관을 파견해 합동 검거작전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국 수사당국은 현지 성매매 업소의 광고 사이트 서버가 한국에 있고 김 씨 등 피의자 일부가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한국 경찰에 먼저 공조수사를 요청했다. 이렇게 시작된 공조수사는 10개월 만에 결실을 맺었다.
국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해외 수사당국과 공조한 첫 합동 검거작전이 성과를 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씨를 구속한 경찰은 한인 성매매 여성들이 국내로 송환되는 대로 사법처리하는 한편 이들을 현지에 내보낸 브로커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14일 오전 1시 15분경 경찰이 압수한 김 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미국 성매매 업소 관계자가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메시지였다. 다급했는지 띄어쓰기도 엉망이었다. ‘지금 맨해튼 다쳤어요. 광고 전부 내려주세요.’ 검거 직전까지 광고주와 대화창구로 쓰던 모바일 메신저 채팅창은 여기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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