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전화를 받고 감쪽같이 연기를 해 보이스피싱 조직원 검거를 이끈 70대 할아버지가 화제다.
전북 김제에 거주하는 79세 한모 씨는 2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 이웃, 은행직원, 경찰과 합심해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붙잡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사건은 19일 오전 9시 30분께 김제에 거주하는 70대 이모 씨에게 경찰을 사칭한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전화가 걸려오면서 시작됐다.
이 씨는 ‘통장 비밀번호가 유출돼 통장의 돈이 인출될 가능성이 있다. 일단 금융감독원에서 돈이 못 빠져나가게 해놨으니 빨리 돈을 모두 찾아 냉장고에 보관하라’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말에 옆집에 사는 농협 전 조합장인 한 씨를 찾았다.
한 씨의 활약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전화를 넘겨받자마자 보이스피싱 사기를 직감한 한 씨는 이에 속은 척 하면서 조직원 검거 작전에 나섰다.
한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중국 쪽에서 온 전화라는 걸 느꼈다”며 “잘못해서 그냥 끊어버리면 놓치니까 연극으로 잘해서 잡아야지 생각해서 그때부터 머리를 썼다”고 말했다.
그는 순진하게 아무 것도 모르는 느낌으로 연기를 했다면서 “어떻게 해야 그 돈이 안 빠져나가고 잘 관리를 할 수가 있냐고 물어보고 잘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러면 친구 되는 분이 같이 협조를 해 주실래요?’라고 하길래 ‘관에서 우리를 도와준다는데 협조를 왜 않겠어요? 힘닿는 데까지 할 테니까 말씀만 하시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통장에서 돈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으니 돈을 찾아서 집 냉장고 냉동실에 넣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한 씨는 기지를 발휘해 돈을 찾으러 가는 척 하면서 시간을 벌기로 했다. 그는 “그쪽에서 ‘(은행 가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하길래, 한 20분 걸린다고 말했다. 사실 한 15분이면 간다. (웃음) 이 5분 정도를 남겨놨다”며 “가면서 차에서 노래를 좀 틀어 놨다. 잡음이 좀 생기면 그쪽이 잘 못 알아들을 거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한 씨는 확보한 5분 사이 전화기를 차에 놓고 은행으로 달려갔다. 그는 은행 직원에게 보이스피싱에 걸렸다며 평소 하던 대로 해달라고 ‘연기’를 부탁하고 경찰에 신고도 요청했다.
부리나케 차로 돌아온 한 씨는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그는 “‘통장 챙겨, 도장 챙겨’ 하면서 조합에 올라갔다. 그쪽에서도 통장 챙기고 도장 챙기는 게 들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은행으로 들어온 한 씨는 전화기 너머 조직원이 들을 수 있도록 돈을 찾는 척 했고, 은행 직원도 합심해 “아이고 아버님, 이런 큰 돈을 왜 찾으세요”하면서 연기를 했다.
한 씨 일행과 은행 직원이 연기를 하는 사이,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다. 집으로 돌아온 한 씨와 이 씨는 조직원의 지시에 따라 냉장고에 돈을 넣는 시늉을 한 뒤 집밖으로 나왔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돈을 가지러 왔던 보이스피싱 조직원 중국인 동포 최모 씨(28)는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19일 절도 미수 혐의로 최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남다른 기지와 연기력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원 검거를 이끈 한 씨는 20일 경찰서에서 감사장과 신고포상금을 받는다. 한 씨는 “포상금으로 주변에 있는 늙은이들하고 술 먹으면서 ‘당하지 말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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