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거주하는 나는 가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편리함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생기는 역설적인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편리함이 주는 불편함이랄까?
공무원들이 사무실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을 받아들일 수 없어 비밀번호 네 자리를 문 옆에 적어 놓는다. 그래서 공무원시험 성적 조작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내가 방문한 치과에서는 구강카메라로 치료 과정을 모두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구강카메라를 사용한 후 매번 소독을 해야 하는 불편함은 거부했다. 환자 간 감염의 위험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카드 결제도 마찬가지. 결제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편의상 서명 패드에 서명이 아닌 간단한 점이나 일직선을 긋고 심지어 점원이 대신 서명을 해주기도 한다. 여기에 제대로 서명을 하려는 나는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듯했고, 어떤 서명 패드는 사인하려 펜을 대는 순간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 버렸다. 이런 습관들은 편리함을 위해 기본적인 절차를 무시해도 된다는 의식을 하루에도 몇 번씩 심어줄 수 있다.
편리함은 좋은 것이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안전한 사회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때론 불편함을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 안전학계에서도 복잡하고 급격히 변화하는 환경에서 어떻게 개인과 조직이 이런 분별 능력을 갖출 수 있을지가 화두다. 세월호 참사 2주년을 맞아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편리함만을 추구하다 반드시 필요한 불편함을 감수하는 인내심은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