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나 지역 사람을 낮춰 부르는 표현은 어느 사회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런 표현들은 통상 인접한 지역이나, 국경을 접한 이웃나라 사람을 대상으로 발달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미국인을 욕할 때 자주 쓰는 ‘양키’란 표현도 원래 미국 남부인들이 북동부 사람들을 비하해 부르던 표현이다.
한국말에도 주변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비하하는 말이 적지 않다. 수천 년 동안 누적된 갈등이 언어에 반영된 것이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비하어로는 상점 주인을 뜻하는 ‘장구이(掌櫃·장궤)’가 변형된 ‘짱깨’ ‘짱꼴라’나 ‘되놈’ 등의 단어가 있다. 일본인을 부르는 비하어로는 ‘쪽발이’ 등이 자주 쓰인다. 말을 알아듣는 외국인 앞에서는 쓸 수 없는 말이다.
지난달 30일 동아일보 취재진은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50여 명을 만났다.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 마주친 이들은 전반적인 한국 여행에 만족하면서도 한국인의 친절도에 불만을 가진 경우가 있었다. 그중 한국인들의 언어 표현을 콕 집어 문제 삼은 사람도 있었다.
중국인 허우루성(侯魯生·39) 씨는 이번 노동절 연휴 중 두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앞으로 한국에 오지 않을 작정”이라고 했다. 단체로 간 백화점, 놀이공원에서 한국인들이 자신의 일행들을 지나치면서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을 수군거리는 걸 듣고 기분이 상해서다.
한국인 중 이런 비하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 설사 하더라도 중국인들이 자신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서 가볍게 내뱉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확한 뜻이 통하지 않아도 욕설이나 비하적 표현의 뉘앙스는 아주 쉽게 전달된다. 자신이 일본 도쿄(東京)에 여행 갔다가 ‘조센진’이란 말을 듣거나, 중국 베이징(北京)에 갔다가 한국인을 비하하는 ‘가오리방쯔(高麗棒子)’란 표현으로 불린다고 생각해보라.
연간 1400만 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아오지만 여전히 한국은 ‘불친절한 나라’라는 인상이 강하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국제 관광경쟁력 순위에 따르면 한국의 외국인 환대 태도 순위는 141개국 중 129위에 그쳤다. 여기엔 외국인을 깔보는 언어 사용을 비롯해 바가지 요금, 불친절한 택시 등이 영향을 끼쳤다. 정부가 ‘K스마일’ 운동을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국민들 사이에 깊숙이 퍼지진 못한 것 같다.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의 수는 2014년에 612만 명을 넘어섰다. 관광 유통 호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커 파워’는 이미 절대적이다. 당장 이달 6일 중국 기업 임직원 8000명이 서울을 찾아 한강에서 ‘삼계탕 파티’를 연다. 이런 대규모 중국인 관광객은 앞으로도 줄줄이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경제 논리나 중국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한국을 찾아온 손님에게 깔보는 말을 한다는 건 우리 자신의 수준을 크게 깎아내리는 일이다. 아무리 한류 드라마, 케이팝으로 외국인들의 호감을 사도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 한 번의 불친절을 경험하는 순간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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