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그늘을 남긴 전체주의자들은 ‘용어 비틀기’를 통한 선동의 힘에 주목했다. 독일 나치스 선전장관 괴벨스는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받지 않는다”며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죄 없는 자를 범죄자로 만들겠다”고 호언했다. 소련의 레닌은 “같은 사안이라도 혁명의 적에게는 부정적 용어를, 동지에게는 우호적이고 순화된 용어를 구사하라. 그래야 선전선동과 목표 달성에 효과적이다”라고 했다.
동양의 지식인 사회에서는 예로부터 정명(正名)을 중시했다. 논어에서 공자가 ‘필야정명호(必也正名乎·반드시 이름을 바로 세워야 한다)’를 강조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한 것도 그만큼 언어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괴벨스-레닌의 ‘용어 비틀기’
현실에서는 왜곡된 언어가 종종 대중에게 먹힌다. 미국과 필리핀 대선에서 수준 이하의 막말을 내뱉는 트럼프와 두테르테의 돌풍은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은 조짐이다.
한국은 어떨까. 좌파 진영 일각에서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을 걸핏하면 ‘극우’로 낙인찍는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극우나 극좌란 폭력을 통해 민족이나 계급 지상주의를 관철하려는 이념에나 적합한 표현이다. 황교안 국무총리,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 이의춘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보 같은 우파 인사들을 극우로 몰아붙이는 행태는 위협 효과를 노린 악성 언어테러 성격이 짙다. 폭력과 선을 그은 좌파 인사를 극좌라고 비난한다면 이 역시 같은 범주의 잘못이다.
군벌 족벌 학벌처럼 재벌은 그 자체로 부정적 뉘앙스가 강하다. 남성일 서강대 교수는 10여 명의 지식인이 집필에 참여해 최근 펴낸 ‘용어 전쟁’에서 “재벌이라는 용어는 기업의 집단이라는 본질을 보여주지 않을 뿐 아니라 ‘벌(閥)’이라는 표현을 통해 부정적 가치를 심는다”라며 정확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이나 대주주 일가가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가 아니라면 재벌이라는 단어의 남용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은 계약직으로, 공기업은 정부기업으로, 일감 몰아주기는 내부거래로, 무상급식은 국가급식이나 세금급식으로 바꿔 사용하자는 ‘용어 전쟁’ 필자들의 제안도 경청할 만하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작명(作名)이 실패한 사례라고 본다. 차라리 ‘창의적 경제’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민간의 창의와 혁신을 북돋아 성장동력을 찾는다는 정책 취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불필요한 논란도 줄였을 것이다.
사실 입각한 정확한 표현 써야
북한식 용어의 무비판적 수용은 특히 경계할 일이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북한은 김일성을 미화, 찬양, 우상화하기 위해 1997년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을 ‘태양절’로 지정했다”고 설명한다. 얼마 전 국내에서 개봉한 러시아 감독 비탈리 만스키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 ‘태양 아래’처럼 거짓과 연출이 만연한 폭압체제에 대한 역설적 문제의식이라면 모를까, 김일성의 생일을 ‘태양절’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류의 양심에 대한 모독이다.
나는 한국이 정치, 경제, 외교안보 면에서 상당 기간 불확실성과 혼돈의 시대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 정치권 기업 국민이 책임감 있게 행동하지 않으면 급전직하로 추락할 위험성도 높다. 이런 때일수록 정제되지 않은 거친 용어가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정확한 용어를 선택해 사용하는 정명의 정신은 국가 난국을 헤쳐 나가는 데 충분조건은 못 되더라도 필요조건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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