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9> 안전띠 미착용 처벌 강화를
전 좌석 ‘생명띠’ 의무화 정착시켜야
16일 경남 함안군 남해고속도로 창원1터널에서 발생한 9중 추돌사고로 4명이 숨졌다. 사고 차량 중에는 중학생 170여 명을 태운 관광버스 5대가 있었다.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더 큰 인명피해를 막은 건 안전띠였다. 출발 전 안전띠 착용을 당부한 인솔 교사 덕분에 학생들은 가벼운 부상만 당했다. 안전띠만 착용해도 치명적인 교통사고 때 사망률이 4분의 1로 감소한다. 그러나 여전히 도로 위 곳곳에서 안전띠는 무시당하고 있다.
“승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안전띠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6일 오전 서울 광진구 동서울터미널. 출발을 앞둔 부산행 고속버스에서 안전띠 착용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승객 서너 명이 주섬주섬 안전띠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대수롭지 않은 듯 의자를 젖히고 잠을 청하는 모습이었다. 서울을 빠져나갈 때까지 안전띠를 착용한 승객은 전체 39명 중 11명.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한 중년 여성이 옆 좌석에 다리를 뻗고 창문에 기대 몸을 뉘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자녀를 무릎에 눕혀 재우는 어머니도 있었다. 안전띠 대신 왼쪽 팔로 아이의 상체를 감싸고 있었지만 버스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마다 아이의 몸이 위태롭게 앞으로 쏠렸다.
올해 16년 차 운전사인 권영근 씨(54)는 이런 승객들을 볼 때마다 가슴을 졸인다. 시속 100km 넘게 달리는 고속버스에서 사고라도 나면 대형 인명 피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지난달엔 버스전용차로로 갑자기 끼어든 차량을 피해 급정거를 하다가 안전띠를 매지 않은 승객들이 앞좌석에 부딪혀 크게 다칠 뻔했다. 이들은 오히려 “운전 똑바로 하라”며 권 씨에게 화를 냈다. 그는 “안전띠를 매 달라고 하면 오히려 불쾌해하고 술에 취해 욕을 하는 승객도 있다”며 “단속에 걸리면 승객 대신 운전사가 과태료 3만 원을 내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출퇴근 광역버스는 ‘착용률 제로’
장거리를 운행하는 고속버스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9일 자정 무렵 서울역에서 인천으로 가는 1400번 광역버스. 정류소 10여 개를 지나 경인고속도로에 진입할 때까지 안전띠 착용을 안내하는 방송은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좌석승객 40여 명 중 안전띠를 착용한 승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2012년 광역버스와 전세버스, 택시의 전 좌석 안전띠 착용이 의무화됐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승객은 “처음 듣는 내용”이라는 반응이다. 1400번 광역버스로 매일 출퇴근하는 박모 씨(25·여)는 “고속버스에선 안전띠를 잘 매지만 출퇴근 버스에서는 혼자 안전띠를 매는 게 유난스러워 보여 착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4년 교통안전공단이 수도권의 광역버스 6개 노선을 조사한 결과 안전띠 착용률은 21.6%에 그쳤다.
○ 안전띠 미착용은 ‘자살행위’
안전띠 미착용 사망자는 2012년 352명 이후 2014년 285명까지 줄었지만 지난해 302명으로 다시 늘었다. 17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안전띠 착용 여부가 확인된 사망자 716명 가운데 42.2%(302명)가 안전띠를 매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았을 때 사망률은 착용할 때보다 약 3.7배나 높다. 석주식 교통안전공단 부연구위원은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차량 내의 의자, 천장과 다중 충돌이 발생하거나 밖으로 튕겨나갈 확률이 높다”며 “앞좌석 탑승자를 뒤에서 가격해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안전띠는 교통사고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그러나 착용을 강제하는 법안은 좀처럼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달 임기가 끝나는 19대 국회에서도 폐기 가능성이 높아 결국 20대 국회에서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할 처지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 좌석 안전띠 착용을 하루빨리 의무화하는 동시에 현행 3만 원인 과태료도 함께 인상해야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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