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서는 비록 곤충으로라도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더니 참석자들이 다들 공감하더라고요.” 2013년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주최한 ‘WSJ 카페 인 서울’이란 행사에서 한 발언이다. 2012년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최 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서 양지바른 곳만 걸어온 여성 장관이 수컷 곤충으로 태어나고 싶을 정도로 차별받았다는 말에 공감할 수 없다는 비판이 일었다.
▷“‘다음 생엔 부디 같이 남자로 태어나요.’ 슬프고 미안합니다.” 술집 화장실에서 ‘묻지 마 살인’을 당한 20대 여성의 추모장소가 된 강남역 10번 출구를 18일 방문한 직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다음 생엔 부디 남자로…’는 한 여성 추모객이 현장에 남긴 글을 문 전 대표가 인용한 것이라고 하지만, 유력한 대선주자가 살인 피해자를 추모하며 쓰기에 적절한 문구였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범인 김모 씨는 미리 술집 화장실에 숨어들어 범행 대상이 오기를 1시간 30분가량 기다렸다. 경찰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렇다고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로 섣불리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선 진술의 신빙성이 약하다. 정신분열증을 앓던 범인은 2008년부터 4차례나 장기 입원을 한 병력이 있다. 범인이 분노를 표출할 상대가 필요했고 그 대상이 방어 능력이 약한 여성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묻지 마 살인’의 피해자를 추모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소통 행보다. 그러나 지도자라면 사안의 본질은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 이번 사건을 ‘여혐(여성혐오)남자 대 여자’ 프레임으로 보는 일부 의견을 문 전 대표가 무비판적으로 추종한 것 같아 실망스럽다. 남자든 여자든 묻지 마 범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설령 여성혐오 살인이라고 해도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은 남녀가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여성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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