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진 화장실서 “살려주세요” 외쳐도, 車소음에 바깥선 안들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4일 03시 00분


본보 여기자 ‘안전 사각지대’ 점검

본보 이지훈 기자가 23일 서울 서초구 한강시민공원 잠원지구의 공공화장실에 폐쇄회로(CC)TV와 비상벨이 설치돼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위 사진). 같은 날 본보 전주영 기자가 강동구의 지하철 5호선 천호역-강동역 지하 공영주차장을 둘러보고 있다. 1430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넓은 주차장에는 안전요원이 한 명도 없어 넓적한 기둥 뒤쪽은 범죄 사각지대로 보였다. 양회성 
yohan@dona.com·변영욱 기자
본보 이지훈 기자가 23일 서울 서초구 한강시민공원 잠원지구의 공공화장실에 폐쇄회로(CC)TV와 비상벨이 설치돼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위 사진). 같은 날 본보 전주영 기자가 강동구의 지하철 5호선 천호역-강동역 지하 공영주차장을 둘러보고 있다. 1430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넓은 주차장에는 안전요원이 한 명도 없어 넓적한 기둥 뒤쪽은 범죄 사각지대로 보였다. 양회성 yohan@dona.com·변영욱 기자
23일 낮 12시 서울 서초구 한강시민공원 잠원지구. 평일 한낮이어서인지 공원을 오가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만큼 적었다. 한남대교 아래에 있는 공중화장실로 향했다. 올림픽대로와 한남대교를 지나는 차량 소음이 꽤나 시끄럽게 들렸다.

화장실은 26m²(약 7.8평) 남짓한 컨테이너박스 형태였다. 요즘은 흔하디흔한 폐쇄회로(CC)TV. 이곳에선 발견할 수 없었다. 여성화장실로 들어가는 미닫이문을 열고 좌변기가 설치된 칸막이 안을 둘러봤다. 지하철역 화장실엔 있는 비상벨도 없었다. 10분 가까이 있는 동안 차 소리만 ‘웅웅’거릴 뿐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 “위급상황 땐? 생각만 해도 아찔”


‘만약 나를 위협하려는 누군가가 들이닥친다면….’ 이런 생각으로 “살려 주세요”라고 목청껏 소리를 질러봤다. 하지만 기자의 목소리보다 차량의 소음이 더 큰 탓에 밖에서 대기하던 동료 기자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비상벨도 없으니 외부에 위급상황을 전할 수단은 손에 쥔 휴대전화뿐이었다. 위급한 상황이 닥쳐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공포심을 불러왔다. 기자가 밤에 찾은 공중화장실은 더욱 범죄에 취약해 보였다. 한밤중에도 한강시민공원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산책로나 편의점 주변 등을 빼면 한적한 곳에 설치된 화장실을 들르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실제 공중화장실은 성 관련 범죄에 취약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4년 공중화장실에서 벌어진 범죄 1795건 중 835건(46.5%)이 강간, 강제추행 등 성 관련 범죄였다. 시민들은 두려움을 호소했다. 직장인 한모 씨(24·여)는 “1주일에 2, 3번 한강 둔치에 나오는데 화장실에서 괴한이라도 들이닥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 같다. 강남 화장실 살인사건 이후부턴 밤엔 공원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 요금 싼 공영주차장…CCTV 조명 부족


“왜 따라오시나요?”

23일 오후 2시 서울 강동구 지하철 5호선 천호역 공영주차장 지하 2층. 양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잰걸음을 걷던 여성은 뒤를 돌아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요즘 흉흉한 사건이 너무 자주 일어나 가뜩이나 불안한데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크게 들려서 놀랐다”며 “여기는 주차요금은 싸지만 안전요원도 없고 한낮에도 어두워 올 때마다 겁이 난다”고 말했다.

서울시설공단이 관리하는 이 공영주차장은 1430여 대를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주차장이다. 지상에는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밀집해 유동인구가 많지만 지하는 딴 세상이다. 지난해 9월 ‘트렁크 살인’ 사건 범인인 김일곤이 여성을 납치했던 대형마트 주차장은 사건 이후 조도를 높이는 등 개선에 힘썼지만 공영주차장의 개선 노력은 더뎠다.

실제 이곳의 CCTV는 넓은 주차공간을 촬영하기엔 그 수가 적어 보였다. CCTV가 등지고 있어 아예 찍히지 않는 사각지대도 있었다. 기둥 뒤편에는 조명이 닿지 않는 곳도 적지 않았다. 회사원 양모 씨(43·여)는 “차에 타자마자 무조건 문부터 잠그는 게 습관이 됐다. 특히 옆에 큰 차나 기둥이 있는 곳에는 누군가 숨어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차를 세우기 꺼려진다”고 말했다.

소규모 공영주차장도 두렵기는 마찬가지. 이날 오후 4시에 찾은 서초구의 동산마을 공영주차장 지하 2층은 전등 40여 개 중 16개에만 불이 들어와 있었다. 코를 찌르는 락스 냄새에 덕지덕지 달린 대형 거미줄은 마치 폐가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내부를 둘러보는데 기자 옆을 지나는 승용차 한 대. 운전자는 창문을 내린 채 기자를 ‘쓱’ 훑어보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괜스레 등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 도심 재개발 예정지도 밤이면 불안


서울 종로구 대학로는 낮이면 학생과 직장인으로 시끌시끌하지만 밤이면 인적이 끊겨 ‘공동화(空洞化)돼 버린다. 직장인 서지윤 씨(25·여)는 “강남 화장실 살인 사건 이후엔 부모님이 호신용 전기충격기와 호루라기를 사 주셨다”고 말했다.

‘뉴타운 사업’이 진행 중인 서대문구 북아현동 일대는 사람들이 떠난 빈집이 주민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 노숙인이나 비행 청소년의 아지트로 쓰이는 빈집이 적지 않아서다. 실제 기자가 돌아보니 자물쇠나 못으로 출입문을 닫아놔도 조금만 힘을 주면 금방 열릴 만큼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주민 김모 씨(72·여)는 “술에 취한 채 빈집에서 나오는 노숙인을 볼 때면 깜짝 놀라곤 한다. 괜한 해코지를 당할까 봐 뭐라고 말도 못하고 경찰이 자주 순찰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공정식 안전문화포럼 회장은 “인구 밀집지역이나 도심은 CCTV 등 감시 장치가 많이 설치돼 있지만 오히려 보행자가 적어 사고 위험이 큰 변두리나 우범 지역은 민원이 적다는 이유로 간과되고 있다”며 “CCTV 설치 지역을 대거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CTV 같은 기계 장치 못지않게 사회적 관심과 감시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람이나 지역 사회 전반의 감시가 활성화되면 범죄를 저지를 기회 자체가 줄어든다”며 “자율방범대 같은 지역 주민의 자체 감시 기능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홍정수·이지훈 기자
#안전#사각지대#공중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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