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그중에서도 핵심생산인구의 비중이 급격히 감소하는 ‘인구절벽’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올해 연중기획으로 마련한 ‘탈출! 인구절벽’ 시리즈를 통해 저출산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의 탈출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부에서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모색한 데 이어 2부에서는 핵심생산인구의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획을 이어갑니다. 여성 및 고령 인력의 적절한 활용 방안, 백세인생 시대에 맞는 평생교육 시스템, 다문화·이민 인력을 고급 인재로 키우기 위한 대책을 모색하겠습니다. 》
▼ 출산-육아에 갇힌 30대… 여성고용 ‘M자 곡선’은 韓-日뿐 ▼
《 출산율과 핵심생산인구 급감이라는 ‘인구절벽’ 문제를 고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여성 인력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든 현실 속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아예 출산을 포기하거나 한 자녀 출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출산과 육아의 벽 앞에 선 여성들의 좌절은 핵심생산인구를 줄이는 동시에 출산율까지 떨어뜨리는 악재로 작용한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여성 인력부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인구절벽을 탈출하자’는 구호는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
○ 여성에게 가혹한 ‘일·가정 병행’
연세대를 졸업하고 2005년 대기업에 입사해 사내커플로 결혼한 여성 A 씨는 명문대, 대기업, 적령기의 결혼과 임신에 이르기까지 안정적인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A 씨는 ‘다시 태어나면 아이 없는 삶을 택하겠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태어난 뒤 양가 모두 아이를 봐줄 수 없는 상황에서 맞벌이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육아의 부담은 거의 A 씨의 몫이었다. 조선족 도우미를 들여 버텨갔지만 세 살 터울로 둘째가 태어난 이후에는 수시로 찾아오는 위기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주5일 근무에 190만 원을 받는 도우미는 “어린애 둘을 보기 힘드니 큰아이는 어디라도 보내라”고 성화였지만 첫아이를 낳자마자 신청해 놓은 어린이집 대기 순서는 200번대에서 줄어들지 않았다. 둘째가 세 살 되던 해 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명예퇴직을 신청한 A 씨는 “부부 모두 일을 해도 출산과 육아의 짐은 대부분 여자가 져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구조”라며 “내가 남편보다 직급도, 급여도 높았지만 (집에) 들어앉아야 하는 것은 나였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6세 미만 자녀를 둔 25∼39세 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임신이나 출산으로 경력 단절을 경험했다는 비율이 20.8%였다. 특히 민간 기업의 경력 단절 비율(24.7%)은 공공기관(7.8%)보다 훨씬 높았다. 경력 단절을 경험한 이유는 결국 양육 문제였다. ‘양육과 직장을 동시에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응답(42.6%)이 압도적이었고, ‘자녀를 맡길 시설이 없다’(23%)는 답이 뒤를 이었다.
○ ‘M자 계곡’에서 허우적대는 한국
한창 업무 능력이 무르익는 30대에 둘째 출산이나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변수를 만나 일을 접는 여성도 많다. 어느 정도 자녀가 성장한 뒤 사회로 복귀하려고 해도 경력 단절 때문에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란 힘들다.
여성에게 유독 가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가 M자형 고용곡선이다. 2010년 이후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추이를 보면 20∼29세는 남녀의 고용률이 50%대 후반으로 거의 같다. 하지만 30∼39세에서는 전 연령대에 걸쳐 남녀 간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진다. 남성은 90%를 넘어서는 반면 여성은 50%대 초반으로 떨어진다. 여성 고용률은 40대 이후 소폭 반등하지만 성별 격차를 극복하지는 못한다. 여성들은 출산·육아기인 30대에 푹 꺼지는 M자형 고용곡선의 골짜기에 갇히는 것이다.
이처럼 여성의 고용곡선이 M자를 나타내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학력 여성의 경력 단절이 두드러진다. 고졸 여성은 40대 이후 고용률이 20대 수준으로 돌아가는 반면 대졸 이상은 30세 이후 고용률이 계속 낮은 L자 구조를 보인다. 고학력 여성이 복귀할 만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A 씨처럼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정규직이나 전문직이라면 ‘돈의 힘’으로 힘겹게 일과 가정을 병행해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 일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경우 ‘임신 및 출산’은 ‘퇴직’과 동의어가 된다.
자녀가 어릴 때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종일반에 아이를 맡긴다 해도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는 또 다른 난관이 닥친다. 오후 1시면 끝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는 워킹맘들에게 ‘마의 시기’로 불린다. 10세도 안 된 아이들이 돌봄교실 입소 경쟁에서 떨어지면 방과 후에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하며 방치된 채 혼자 시간을 때워야 한다.
○ 실질적인 양육 지원이 절실
이처럼 일하는 여성이 임신을 두려워해야 하는 현실, 워킹맘이 육아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출산율, 세계에서 가장 급속한 고령화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인구절벽을 막기 위해 시급한 것은 일과 가정이 양립 가능한 풍토를 만드는 것이다. 여성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자녀의 나이대별로 차별화된 육아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 김종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이가 초등학교 때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렵다는 여성들이 많으므로 영유아에게 집중됐던 돌봄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며 “학교도 불필요한 학부모 참여 활동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빠 육아를 장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남성도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고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만드는 것.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가족 친화 경영을 하지 않는 기업에는 여성 남성 인재가 모두 가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일과 가정이 양립 가능한 회사는 매출도 오르고 직원 이직률도 낮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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