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경고처럼… 안전띠 미착용 경고그림, 차량에 붙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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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10> ‘생명띠 의무화’ 안내로는 한계… 충격요법 필요

동아일보는 교통안전공단과 함께 광역버스와 택시 앞좌석 뒷면에 부착할 수 있는 안전띠 미착용 경고 그림 시안을 제작했다.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생명줄이 끊어진다’는 메시지를 인형극(맨위쪽 사진)과 차량 밖으로 튕겨나간 희생자의 이미지(가운데 사진)로 
표현했다. 평범한 문구로 구성된 현재의 홍보물(맨아래 사진)보다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교통안전공단 제공
동아일보는 교통안전공단과 함께 광역버스와 택시 앞좌석 뒷면에 부착할 수 있는 안전띠 미착용 경고 그림 시안을 제작했다.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생명줄이 끊어진다’는 메시지를 인형극(맨위쪽 사진)과 차량 밖으로 튕겨나간 희생자의 이미지(가운데 사진)로 표현했다. 평범한 문구로 구성된 현재의 홍보물(맨아래 사진)보다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교통안전공단 제공
“고속버스도 아닌데 안전띠를 매야 돼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 경기 파주시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회사원 최모 씨(32)에게 평소 버스에서 안전띠를 착용하는지 물었다. 그는 “불편해서 한 번도 맨 적이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최 씨가 타는 버스는 광역급행버스(M버스). 2012년 11월부터 M버스는 전 좌석 안전띠 착용이 의무화됐다. 승객이 탑승할 때 안전띠 착용 안내방송을 하지 않으면 운전자에게 3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하지만 이날 취재진이 만난 M버스 승객 50명 중 13명(26%)은 안전띠 착용이 의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아들집에 갈 때 가끔 M버스를 타는 박모 씨(59·여)는 “버스에서 안내방송을 듣거나 홍보물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2014년 교통안전공단이 조사한 수도권 M버스의 안전띠 착용률은 21.6%. 승객 5명 중 4명은 안전장치도 없이 시속 100km를 넘나드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최근 취재진이 탑승한 M버스는 안전띠를 착용한 승객이 평균 2명에도 못 미쳤다. 2년 전보다도 안전의식이 오히려 후퇴한 것이다.

정부의 무관심이 승객의 ‘안전 불감증’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많다. 의무조항만 만들었을 뿐 이를 알리고 불법을 근절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경찰 관계자는 “법을 강화한다고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적극적인 홍보와 단속이 병행돼야 하는데 운수업체나 여론 눈치를 너무 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 ‘안전띠 착용’ 스티커 부착은 고작 10%

취재팀은 19일부터 닷새 동안 서울에서 인천, 경기 수원 성남 용인 김포 파주시를 오가는 광역버스 30대를 직접 탔다. 이 가운데 좌석 뒷면에 안전띠 착용 안내문이 붙어 있는 차량은 3대에 불과했다. 부착한 지 오래돼 좌석 일부에만 안내문이 남은 버스도 있었다. 2년 전 교통안전공단 조사(62.5%)보다도 크게 못 미치는 결과다. 시민들이 안전띠 착용이 의무라는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승객이 쉽게 알아채고 안전띠 착용을 습관화할 수 있도록 강력한 전달 수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담뱃갑에 경고 그림을 넣는 것처럼 안전띠 미착용을 경고하는 그림이 대표적이다. 한상필 한양대 광고홍보학부 교수는 “홍보 효과를 높이려면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안전띠 미착용 경고 그림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본보는 교통안전공단과 함께 안전띠 미착용 경고 그림을 직접 제작했다. 문자 위주인 현재의 홍보 스티커 디자인을 탈피했다.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마리오네트 인형극 이미지 등으로 표현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인천에서 M버스로 출퇴근하는 김윤하 씨(27·여)는 “글자는 너무 뻔해서 눈에 안 들어왔는데 사진은 계속 잔상이 남아 안전띠 착용을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김모 씨(58)는 “뒷좌석 창문 옆에 오토바이 확인용 거울을 부착한 뒤 사고 위험이 크게 줄었다”며 “운전자의 참견을 싫어하는 승객들도 불쾌감 없이 받아들일 것 같다”고 기대했다.

지나치게 경직된 광고 심의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지난해 한국도로공사는 뒷좌석 안전띠 착용률을 높이기 위해 방송 광고를 제작했다. 사고가 발생하자 뒷좌석에서 안전띠를 매지 않은 아들이 앞좌석의 아버지(운전자), 옆에 앉은 누나와 잇달아 충돌하는 장면이 담겼다. 하지만 이 장면들은 너무 충격적이라는 이유로 모두 삭제됐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핵심 메시지를 담은 장면이 삭제돼 효과가 반감된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아쉬워했다.

○ 의무화 4년째…단속 건수는 ‘0’

유명무실한 처벌 규정도 문제다. 경기도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안전띠 착용 안내방송을 하지 않아 과태료를 낸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안내방송 여부를 확인하려면 암행 단속을 해야 하는데 각 자치단체의 단속 인력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사실상 승객의 신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유동배 경찰청 교통안전계장은 “최근 관광버스 대열운행이 적발되면 30∼90일의 영업정지를 내리기로 한 것처럼 안전띠 미착용이 적발되면 운수업체에 대한 행정 처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영국처럼 운전자가 아닌 탑승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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