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유영]산부인과라는 불편한 이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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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오피니언팀 기자
김유영 오피니언팀 기자
중학생인 지인의 딸이 최근 동네 산부인과에 갔다. 하굣길이라 교복을 입고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흘끔거리는 시선을 줄곧 받아야 했다. 그는 “왜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산부인과는 결혼한 어른이나 가는 곳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럴 법하다.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출산할 ‘산(産)’과 결혼한 여성인 ‘부인(婦人)’이 합쳐진 산부인과는 ‘임신, 해산, 신생아, 부인병 따위를 다루는 의학 분야’로 정의되어 있었다.

그런데 여성 질병은 부인만 걸리는 걸까. 여성들이 대체로 출산 관련 문제로 산부인과를 찾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산부인과에는 유방 관련 질병이나 생리불순, 여성 암 등 출산과 직접 관련이 없는 진료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엄밀히 말해 산부인과는 부인이 아니어도 가는 곳이고 가야 하는 곳이다. 어쩔 수 없이 혹은 어쩌다 보니 아이를 낳지 않거나(못하거나) 결혼을 안한(못한) 여성도 많다. 여자 청소년도 산부인과에 가야 할 일이 제법 생겼다.

하지만 산부인과의 ‘심리적 문턱’이 높다 보니 여성이 산부인과에 가는 건 내과나 이비인후과, 정형외과에 갈 때와 좀 다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 미혼 여성의 82.4%는 ‘산부인과 방문이 꺼려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변엔 마흔이 되도록 산부인과의 문턱을 밟지 않은 미혼 여성도 꽤 있다.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청소년의 62.3%는 ‘산부인과에 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상 징후가 있어도 심각한 통증이 없다면 그냥 참거나 인터넷을 찾아본다는 사람도 상당수였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 특유의 보수성과 이중성의 영향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산부인과에 가면 성관계나 임신 낙태 등으로 온 것으로 여기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산부인과라는 고정관념이 주는 리스크는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자궁경부암만 하더라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30대 여성 암환자 7명 중 1명꼴로 걸리는 병이 됐다. 이 병은 예방할 수도 있다. 암이 되기 이전, 즉 전암(前癌) 단계가 7∼20년으로 조기에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병에 대비해 검진을 꼬박꼬박 받아야 하는 이유다.

한때 대한산부인과학회를 중심으로 산부인과를 여성의학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내과 등 다른 과에서 진료과목이 겹치거나 여성 환자를 뺏길 걸 우려해 반대하는 데다 의료법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산부인과는 일제강점기 때 이름으로, 그대로 쓰기에는 세태가 많이 변했다. 지금은 국가가 만 11∼12세 여아들에게 자궁경부암 백신을 무료로 접종하는 시대다. 또 올해부터는 자궁경부암 무료 검진 대상 연령이 만 30세 이상에서 만 20세 이상으로 확대됐다. 부인만 산부인과에 간다고 하기엔 다양해진 삶의 형태만큼 방문자 층위도 다양해진 것은 물론이다. ‘부인이 아닌 여성’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진료받을 권리를 이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김유영 오피니언팀 기자 abc@donga.com
#산부인과#자궁경부암#여성의학과#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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