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용 문신 아이도 “엄마”, 눈물짓게 하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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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소년원생들의 사연이 소곤대는 ‘푸르미 라디오’ 아시나요

서울소년원 아이들은 매일 ‘푸르미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사연을 적는다. 서울소년원뿐만 아니라 전국 10개 소년원 아이들이 보내온 사연이 7년간 4만2000건을 돌파했다. 의왕=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서울소년원 아이들은 매일 ‘푸르미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사연을 적는다. 서울소년원뿐만 아니라 전국 10개 소년원 아이들이 보내온 사연이 7년간 4만2000건을 돌파했다. 의왕=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키가 큰 아이, ‘푸시업’을 많이 해 팔 근육이 터질 것 같은 아이, 몸에 호랑이 용 잉어 문신이 가득한 아이…. 그 누구라도 이 방에 누운 아이들의 눈과 귀는 천장의 스피커에 집중돼 있다.

“사랑하는 우리 아빠, 우리 엄마! 만날 때마다 투정 부리느라 해야 되는 말도 못 하고…. 더 이상 나 때문에 눈물 흘리지 말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많이 사랑해요.”

‘정D’(정재형 DJ의 준말)의 목소리에 형진이(가명·17)는 눈이 따끔따끔해지는 것 같다. 괜히 옆자리 친구를 툭툭 쳐본다. ‘서른두 밤만 자면 돼.’ 형진이가 경기 의왕시 고봉중·고등학교에 온 지도 어느덧 1년 2개월이 지났다. 학교로 부르지만 공식 명칭은 서울소년원. 지난달 30일 밤, 꿈에서 형진이는 엄마가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헤어디자이너로 일했다. 서울소년원에서 기술을 배워 지난해 12월 취득한 바리스타 자격증을 뽐내며 손님들에게 커피도 대접했다.

전국 10개 소년원 아이들(현재 1039명)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푸르미 라디오’와 함께한다. 푸르미 라디오는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에서 2009년 3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소년원생들이 보내온 사연은 최근 4만 건을 돌파해 현재 4만2244건에 이른다. 소년원생만 들을 수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는 건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거친 아이들이었지만 ‘푸르미 라디오’에 보내는 편지 앞에서는 순해진다. 알록달록 색을 칠해가면서 사연이 채택되기 바라며 안간힘을 쓴다. 의왕=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거친 아이들이었지만 ‘푸르미 라디오’에 보내는 편지 앞에서는 순해진다. 알록달록 색을 칠해가면서 사연이 채택되기 바라며 안간힘을 쓴다. 의왕=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라디오는 매일 아침(오전 6시 반∼7시) 점심(오전 11시 20∼55분) 저녁(오후 9시∼9시 35분)에 전국 소년원에서 방송된다. “우리에겐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 소년원생이 직접 지은 로고송이 시작되면 아이들의 천국이 시작된다. 서울소년원에서 매일 오후 녹음해 방송 파일을 인터넷을 통해 보내면 각 소년원 생활관 스피커로 나간다.

푸르미 라디오에 접수되는 사연은 모두 손편지다. 소년원생들은 사연과 신청곡이 꼭 뽑힐 수 있게 알록달록 그림까지 그린다.

소년원에 오기 전까지 들어보지도 못했던 라디오에 아이들이 빠져드는 건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송화숙 서울소년원장은 “엄마 아빠 중 한쪽이 없거나, 있어도 가정폭력, 인터넷·게임 중독, 정신 문제로 자녀를 방임하는 기능적 결손까지 따지면 이곳 아이들 가운데 부모에게 문제가 있는 건 90%에 이른다”며 “학교 교사도 손을 놓으니 아이들이 마음 붙일 데가 없다”고 말했다.

4월, 소년원에서 21개월 만에 퇴원한 김미진(가명·20·여) 씨는 “라디오를 들으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안했다. 모두 라디오가 나오는 시간을 제일 기다렸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라디오를 통해 부모에게 굳게 닫았던 마음의 문도 연다. 매일 있는 ‘효도합시다’ 코너에서 처음으로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다.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야지 하다 정신 차려 보니 이곳에 왔는데, 들어오기 전에도 저는 끝까지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왜 날 낳았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저를 다독여 줬습니다.”

“뭐가 어렵다고 사회에서 어머니 다리도 한 번 주물러 드리지 못하고 집을 나가고 말썽을 피웠는지 너무 후회됩니다.”

효도 사연이 채택되면 푸르미 라디오가 해당 부모에게 아이 이름으로 편지와 선물(화장품, 영화 관람권)을 보내준다. 부모가 카카오톡으로 답장을 보내면 다시 소개해 준다. 이때면 생활관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앞으로의 삶을 다짐하는 사연도 많이 온다.

“친구들은 대학도 가는데 저만 뒤처진다는 불안감에 하루하루가 진흙탕을 뒹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나태했던 제가 꾸준히 책을 읽고 일본어 공부도 합니다. 나가면 고3으로 복학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방송 성우학원에 다닐 거예요.”

신달수 서울소년원 교육정보관리과장은 “아이들이 라디오에 자신의 사연이 소개되면 자긍심도 갖고 잘 지키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사연이 없어서 지금보다 방송 시간이 짧았고 신청곡 위주로 운영됐다. 푸르미 라디오가 지금껏 유지돼온 원동력은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믿음이었다.

2012년부터 DJ를 하는 정재형 씨는 “처음에는 ‘밤마다 시끄럽다’ ‘그만두라’는 편지도 왔다. 하지만 형처럼 공감해주고 이름도 기억해주니 아이들이 소통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송 원장은 “소년원에 온 아이들이라도 대부분은 변한다. 그 가능성을 믿고 아이들을 대하면 그들도 진심을 알기 때문에 반드시 변한다”고 강조했다.

의왕=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소년원생#푸르미 라디오#새출발#소년원#정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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