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아내는 3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냈다. 남편을 잃게 만든 청년에게 화가 났지만 용서했다. 가족들도 분노보다 힘든 용서를 선택했다. 안타까운 비극에 곡성 주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상처를 어루만졌다.
이날 오후 3시 광주 북부경찰서 담장에서 남성 4명이 뭔가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던 중 50대 남성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으려고 했다. 이 남성이 “정말 죽을죄를 졌다”며 사죄하려 하자 다른 2명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며 말렸다.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려 했던 남성(57)은 사흘 전 인근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유모 씨(25·대학생)의 아버지였다. 옆에서는 유 씨의 형(28)이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무릎을 꿇으려는 아버지를 말렸던 2명은 유 씨와 충돌해 숨진 전남 곡성군 공무원 양대진 씨(39)의 작은아버지(61) 등 유족이었다. 유족들은 유 씨 아버지의 손을 잡고 “슬픔을 이겨 내자”며 위로했다.
경찰서 담장 옆에서 10분간 진행된 대화는 한숨과 눈물로 이어졌다. 유 씨의 아버지가 “내가 죄인”이라며 눈물을 흘리자 유족들은 “모두 아픈 상처다. 비극이 빨리 잊혀져 상처가 아물기를…”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분노보다 용서를 선택한 유족들은 유 씨 가족의 빈곤한 형편을 알고 보상을 받지 않기로 했다. 유족들은 유 씨 가족이 43m²짜리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등 경제적 능력이 없고 80대 노모까지 봉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양 씨의 작은아버지는 “이번 사고는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난 안타까운 일”이라며 “고인의 만삭 아내(36)도 처음에는 용서하지 않았지만 장례식이 끝난 후 용서했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전 치러진 양 씨의 장례식은 눈물바다였다. 만삭의 양 씨 부인은 장례식장을 떠나는 운구차를 어루만지며 “오빠 가지 마, 가지 말아요”라며 울부짖었다. 영문을 모르는 아들(6)은 “우리 어디 가요”라며 생긋 웃는 얼굴로 운구 행렬을 뒤따라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양 씨는 이날 광주 북구 영락공원에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가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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