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고교 3학년이던 열여덟 살 신덕균 군은 자원입대를 했다. 그의 아버지가 육군 참모총장이었고, 형은 전북 편성관구 사령관으로 있었지만 ‘최전방을 자원했다가 국립묘지에 묻히고 말았다’는 기사를 몇 년 전 현충일에 읽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불과 열여덟 살, 학생의 신분으로 자원입대한 것만도 장한 일인데 최전방을 자원했다니. 이처럼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던지고 전선으로 달려간 우리 젊은이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나라를 지키고 살아갈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태극기를 챙겨들고 대문을 나서니 앞집에도 뒷집에도 골목 어느 집에도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았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교수고 사장이고 고위직 공직자인 걸로 알고 있다. 현충일만큼은 우리가 마음을 모으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생각하는 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6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돈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은 군대 안 가고, 군 복무 중에도 빠져나갔다고 한다. 어떤 이는 입대해서 병원에 들어가 있다가 제대하고, 어떤 이는 밀항으로 미국에 가서 박사학위를 받아와 장관이 됐다고 했으며, ‘못난 놈들’이 나라를 지킨다고 하니 한숨이 나온다. 이 나라에는 그 못난 놈들이 군대 가서 용감하게 싸우고, 법을 존중하고, 세금도 꼬박꼬박 낸다.
6·25전쟁 때의 학생들은 군대를 안 가도 되는 어린 나이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원입대해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꽃다운 나이에 국립묘지에 묻히고 말았다. 어느 시대고 이렇게 목숨을 내놓고 싸우겠다는 투철한 정신으로 무장한 군인이 있다면, 그 나라에는 어떤 적군이 쳐들어와도 백전백승할 것이다. 근래 방위산업 비리에 연루돼 구속된 전직 참모총장을 비롯해 성희롱 의혹 등으로 옷을 벗은 고위 장성들은 이 어린 병사들의 영혼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다.
1952년 10월 11일 백마고지를 앞에 놓고 우군과 적군이 빼앗기고 되찾기를 거듭하던 중, 적이 퍼붓는 기관총을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강승우 소위가 오귀봉 하사와 안영권 하사와 함께 양손에 수류탄을 뽑아들고 총알이 빗발치는 적군 속으로 뛰어들어 재가 되었다. 투철한 군인 정신으로 삶을 마감한 이들이야말로 군인 중 참군인이요 이 나라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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