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평창군에 사는 당뇨병 환자 손모 씨(58)는 한 달에 한 번씩 약을 처방받기 위해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인 강릉의 대학병원까지 간다. 손 씨는 3분 남짓한 형식적인 진료를 받고 약 처방을 받을 때마다 병원 진료비와 약값으로 5만4000원가량을 지불한다. 기름값과 한 끼 식사까지 하면 총 비용이 8만 원이 훌쩍 넘는다.
하지만 7월부터 손 씨는 약을 타는 데 쓰는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게 된다. 손 씨는 10분 거리인 진부면의 동네의원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고, 필요할 경우 다음 진료 전까지 전화 상담도 받을 수 있다. 동네의원 의사에게 한 번의 대면 상담에 두 차례의 전화 상담(시범사업 1년간 무료)까지 세밀한 관리를 받지만 비용은 진료비와 약값을 포함해 3만5000원 정도다.
○ 전화 상담에 건강보험 회당 2000원
보건복지부는 이같이 경증 당뇨병, 고혈압 환자가 동네의원 의사에게 전화 상담을 활용해 ‘만성질환 통합관리’ 서비스를 받을 경우 7월부터 건강보험 지원을 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3일 제8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만성질환 관리 수가(의료 서비스에 대해 건강보험 재정에서 병원에 지급하는 돈) 시범사업 추진계획’을 심의 의결했다고 7일 밝혔다. 전화 상담에 건강보험 수가가 인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시범사업이 실시되면 경증 고혈압, 당뇨병 환자는 동네병원 의사와 1번 대면 진료를 받고 다음 진료 전까지 2회가량 전화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전화 상담은 필요 시 수차례 받을 수 있지만 수가 지원(회당 약 7000원)은 1번 대면 진료당 2회까지만 지원된다. 환자들은 시범사업 기간에는 전화 상담에 따른 추가 비용 부담을 하지 않아도 된다. 본사업이 시작되면 환자들은 회당 약 2000원(자기부담률 30% 이하)의 비용이 부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고혈압, 당뇨병 환자들은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관리를 받지 못해 다양한 합병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난해 만성질환 진료비는 총 19조4000억 원으로 전체 의료비(54조5000억 원)의 35%에 이르렀다. 당뇨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32.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2.8명)의 1.4배에 이르고 있다. 당뇨병 환자 중 입원비율도 인구 10만 명당 310.7명으로 OECD 평균(149.8명)의 2배 수준이다.
○ 환자와 복지재정에 모두 윈윈
동네의원이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해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것도 문제로 지적돼 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경증 고혈압 환자 7만1000명, 경증 당뇨환자 15만3000명 등 총 22만4000명이 지난해 대형병원 외래진료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형훈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경증 환자들이 동네병원을 이용하면 대형병원 쏠림이 완화되고, 건보재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전화 상담 활성화와 함께 의료계 반발 속에 19대 국회에 계류됐던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을 20대 국회에서 재추진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7일 관련 의료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정부 입법이 추진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료계는 만성질환 통합관리에 포함된 전화 상담과 원격 모니터링 활성화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의 전 단계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만성질환 관리가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실행된 것은 전체 보건의료 시스템으로 볼 때 잘된 일이다”라며 “하지만 전화 상담이 한 발짝 나아가 환자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원격의료로 변질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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