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재판관임과 동시에 대한민국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 입은 법복이기 때문에 개인이 소장하는 것보다 법원에 기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재판관인 권오곤 전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부소장(63·사법연수원 9기)이 8일 재직 당시 입었던 법복 2벌을 법원도서관에 기증했다. 가톨릭 사제복을 연상시키는 붉은색 법복은 권 전 부소장이 고법 부장판사이던 2001년 ICTY 재판관에 선출된 후 15년 동안 입어온 옷이다. 유엔이 1993년 옛 유고슬라비아 대량학살을 재판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세운 ICTY는 학자나 외교관 일색이던 법정에 정통 법관 출신인 권 전 부소장을 올 3월까지 유임시켰다. 권 전 부소장은 서울대 법대 수석졸업, 사법시험 수석합격, 사법연수원 수석수료 등 ‘수석 3관왕’을 거치며 22년간 판사로 재직했다.
이날 기증한 법복 중 한 벌은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이슬람계 대량학살을 주도한 ‘발칸 도살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을 재판할 때 입었고, 나머지 한 벌은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 사건의 재판장일 때 입었다. 한 벌당 가격은 70만∼80만 원 정도지만 국제사법기구 첫 한국인 재판관이자 첫 고위직의 명예가 담겼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법복 기증에는 법원과 후배 판사들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다. 권 전 부소장은 과거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할 때 지금의 자줏빛 판사복을 디자인하며 세계 각국의 법복 샘플을 구하기 어려웠던 경험도 기증을 결심한 이유라고 밝혔다. 최근 후배인 정창호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49), 백강진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특별재판소(ECCC) 재판관(47)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퇴임 후 법복 기증을 권유해 승낙을 받았다.
권 전 부소장은 “법복은 사제복처럼 입는 판사에게 세상의 이해와 멀어져 공정한 재판을 하게 하는 힘이 있다”며 “15년 동안 거의 매일 입은 저 법복에는 처음 국제무대에 나간 한국 판사가 외국 재판관들과 씨름하며 선례를 만든 역사와 경험이 묻어 있다”며 법복의 무게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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