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재일교포 첫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9만여 명 끌려갔지만 한국, 일본도 무관심 “어머니가 무상으로 치료받을 수 있다고 해서 가족이 북한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아버지는 일본 물건을 뇌물로 바치며 생계를 꾸렸고, 어머니는 약이 없어 제대로 치료받지 못 하다 사망했다.”(김소자·66)
“소학교 입학 때부터 간첩 새끼, 종파 분자 등 소리를 들으며 손찌검을 당했고 극심한 차별에 시달렸다”(김순희·63)
북송 재일교포에 대한 인권실태조사 결과가 처음으로 나왔다. 통일아카데미는 탈북한 북송 재일교포 40명을 심층 인터뷰한 실태조사 보고서를 1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발표한다. 1959년 북한적십자사와 일본적십자사 간 체결된 캘커타협정에 따라 시작된 재일교포 북송 문제는 정식으로 실태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다.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재일교포 북송이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상 유인 납치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에 가기로 결심한 계기는 조총련의 선전 및 권유(30명·75%) 때문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북한은 원하는 학교와 직장 제공(20명·50%)과 생활 보장(13명·32.5%)을 약속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 교육과 취업 등에서 차별받던 재일교포들이 북송을 결심하게 됐다. 북송 재일교포의 직업은 공사장 인부, 일일고용자, 학생 등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북한 정착 과정은 약속과는 달랐다.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당국의 감시를 받았고(25명·62.5%), 결혼 직장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받았다(14명·35%). 또 일본에 거주하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현금과 물품을 요청해야 했다(30명·75%). 보위부나 당 간부들이 일본에서 보낸 현금과 물품을 빼앗는 바람에 가족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1959~1984년 25년간 186차례에 걸쳐 9만3300여 명의 재일교포가 북한으로 입국했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황재일 통일아카데미 연구위원은 “북한 내에서 조직적 인권 유린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증언으로 국제사회가 북송사업의 실태 조사에 나설 필요가 있다”며 “일본에서도 북한에서도 차별에 시달린 북송 재일교포에 대한 관심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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