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국제’ 명칭 붙으면 후원금 제한 없다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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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의료업계, 학술대회 규정강화 요구

국내 한 제약사에서 일하는 마케팅 담당자 A 씨는 지난해 초 전공 학회에서 임원을 맡고 있던 대학병원 의대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해외 석학을 초청해 서울에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며 홍보 부스 설치와 후원금을 부탁한 것. A 씨는 해당 교수가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해 2000만 원을 후원했다. 하지만 학술대회엔 학회와 큰 관련이 없는 동남아 국가의 교수 10명 안팎만 참석했을 뿐 국내 학술대회와 별반 다른 점이 없었다.

최근 일부 의사가 제약사 영업사원에게 ‘빵 셔틀(심부름)’을 시킬 정도로 리베이트 관행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경찰 수사로 드러난 데 이어 학술대회 후원금을 둘러싼 논란도 일고 있다. 제약·의료기기업계 단체는 보건복지부에 후원금 제한 규정 강화를 제안하고 의료계가 이에 반발하면서 갈등이 심해지는 모양새다.

한국제약협회와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최근 공정경쟁규약 개정안을 복지부에 제출했다. 현재는 국내에서 학술대회를 열어도 해외 전문가가 ‘150명 이상’ 혹은 ‘5개국 이상’에서 참가한다는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만 충족해도 ‘국제학술대회’로 인정해 주는데 둘 다 충족하도록 인정 기준을 강화해 달라는 내용이다.

이는 학술대회 앞에 ‘국제’라는 딱지가 붙으면 후원금을 무한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시행 중인 각 협회의 공정거래규약에 따르면 국내 학술대회에 제약·의료기기업체의 후원금은 부스당 최대 300만 원으로 제한돼 있다. 또 학술대회를 주최한 학회가 총비용의 30% 이상을 자체 부담해야 하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협회가 주최 측에 비용 결산 내용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학술대회에는 이런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의료 관련 국제학술대회의 절반가량은 외국인 참가자가 50명도 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제약·의료기기협회의 요청대로 국제학술대회 후원 관련 규정을 명확히 하면 학술대회 공금 유용 등 부작용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일부 의료계 관계자도 “일부 학회는 후원금을 쌓아 놓고 학술대회 외의 목적으로 사용한다”며 자정을 요구하고 있다.

의료계는 규정이 엄격해지면 학술 활동이 위축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현행 국내 학술대회 후원 규정은 공무원 보수 규정을 준용한 것이라 해당 예산 규모로는 유능한 연구진을 초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일부 희귀질환은 전문가가 세계적으로 100명도 되지 않아 새 기준을 충족하는 국제학술대회를 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최근 개최된 국제학술대회 119건을 분석한 결과 업계가 제시한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20건(16.8%)에 불과했다”며 “이제 막 성장하려는 소규모 학술대회의 싹까지 잘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제약-의료업#학술대회#규정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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