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양이란 말은 구약성서에서 비롯됐다. 정확히 말하면 양(羊)이 아니라 ‘희생염소(scapegoat)’다. 고대 유대인들은 속죄의 날 의식을 치르기에 앞서 염소 두 마리를 골랐다. 제비를 뽑아 한 마리는 도살해 피를 뿌리고, 나머지 한 마리는 황무지로 내쫓았다. 산 채 광야로 내몰린 희생염소는 사회 구성원들의 허물을 대신 뒤집어쓰고 떠난 것으로 간주됐고 남은 이들은 죄의 사함을 받는다고 믿었다. 요컨대 내 안의 죄를 외부화해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이 희생염소 의식의 요체다.
세계적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그의 저서 ‘내 안의 유인원’에서 “잘못된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우리의 특기가 아니다. 희생양 찾기는 인류가 지닌 가장 기본적이고 강력하면서 잘 의식하지 못하는 심리적 반사작용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썼다. 희생양 만들기는 인간뿐 아니라 침팬지 등 유인원에게 내재된 본성이며 책임 회피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인류가 진화해 왔다는 설명이다.
이런 본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일이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다. 이미 익숙해진 겨울철의 황사, 미세먼지가 올해엔 유독 초여름까지 이어지고 정부 당국의 예보까지 수시로 틀려 국민들의 짜증이 폭발했다. 이런 와중에 미세먼지의 상당 부분은 중국이 아니라 국내에서 배출된 것이란 분석들이 속속 나오면서 사태가 복잡해졌다.
미세먼지는 바다 건너 온 것이라 믿을 때 기관지는 답답해도 마음은 편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모두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나 아닌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려야 하는 일이 된 것이다.
첫 타깃은 디젤차였다. 이어 석탄을 때는 화력발전소들도 손가락질을 받았다. 급기야 삼겹살과 고등어까지 표적이 됐다. 애먼 삼겹살과 고등어가 희생육(肉), 희생어(魚)가 된 건 환경부가 진행한 밀폐공간 미세먼지 발생 실험의 대상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온 국민이 즐겨 먹고, 기름기가 많다는 이유였다.
시계를 되돌려 1970, 80년대 서울을 생각해 보자.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매캐한 공기를 호흡하며 살던 당시엔 지금처럼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많지 않았다. 너나없이 집집마다 난방을 위해 연탄가스를 배출했고, 검은 매연을 내뿜는 버스를 타고 출퇴근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게 분명한 잘못에 인간은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요즘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된 이들은 하나같이 억울해한다. ‘클린 디젤차’를 사면서 환경을 해칠 것이라고 생각한 경유차 주인은 없다. 삼겹살, 고등어를 구워 먹으며 죄책감을 느낀 국민이 몇이나 될까. 석탄화력발전소 허가를 내줬다고 비판받는 정부 관계자들은 먼지 배출이 적은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극력 반대해 온 환경단체 등에 불만이 크다.
불확실한 자료에 근거해 벌이는 미세먼지 주범 찾기 게임은 심리적 안정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사회적 실익은 없다. 그보다 나은 선택은 이런 사안을 발전의 계기로 삼는 것이다. 정부 대책에 일부 포함된 것처럼 수소전지차, 전기차 등의 판매를 지원해 친환경차 개발 경쟁에서 한국 기업이 앞서가도록 돕는 게 그런 방법이다. 발전소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기술을 고도화해 중국 등에 수출할 수도 있다. 고등어, 삼겹살이 정말 문제라면 집진 시설을 갖추고 생선을 구워 파는 생선가게, 친환경 삼겹살집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3월 열린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복지, 환경, 개인정보보호와 같이 꼭 필요한 규제도 있다. 좋은 규제는 더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좋은 규제는 미래산업을 키우고 일자리를 만든다. 지금이 그런 규제가 꼭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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