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옛날 ‘설문대할망’(제주창조신화의 주인공인 거대 여신)이 제주사람들에게 제안을 한다. 명주 속옷을 만들어주면 섬과 육지를 이어주겠노라고. 제주사람들은 열심히 온 섬을 뒤지며 명주를 모은다. 명주 속옷을 만들려면 100동이 필요했다. 그 사이 설문대할망은 흙을 퍼 날라 바다를 메우기 시작한다. 아무리 모아도 명주는 99동. 1동이 모자랐다. 결국 섬과 육지가 이어지지 않았지만 설문대할망 앞치마에서 새어나온 흙은 ‘오름’이 됐다.
봉긋하게, 아담하게, 우뚝하게, 때론 우악스럽게. 오름은 제주 섬 곳곳에 그렇게 서 있다. 한라산이 제주의 아버지, 어머니라면 오름은 자식 같은 존재다. 용암이 바다 위로 솟구친 한라산이 제주를 만들고 그 위에 오름은 곶자왈(용암 암괴 지대에 형성된 자연림)과 용암계곡을 만들어 생명의 기운을 키웠다. 오름은 ‘오르다’의 명사형이지만 제주에서는 악(岳), 봉(峰), 뫼(山)를 이른다. 전에 기생화산으로 불리었으나 지금은 소(小)화산체, 독립 화산체로 불린다. 한라산 백록담을 제외한 소화산체가 오름으로 368개가 산재해 있다.
이 오름들을 풍수지리 측면으로 재조명한 신영대 제주관광대 관광중국어계열 교수(56)를 10일 대학 교정에서 만났다. 그는 “제주의 풍수에 있어서 오름은 지맥을 이어주는 도체(導體) 역할을 한다”며 “오름은 마을에 기운을 모아주고 허한 부분을 막아 안녕과 행복을 도모해주기도 하고 곳곳에 뼈를 묻는 망자의 고향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 제주를 알려면 오름을 이해해야
제주사람들은 오름에서 땔감, 산나물, 약초를 얻었고 소나 말을 키웠다. 외세의 침입을 알리는 연기를 피워 올렸고 민중 항쟁의 거점이기도 했다. 제주의 최대 비극인 ‘제주도4·3사건’의 현장이었고 일제강점기에 오름은 거대한 땅굴진지였다. 제주사람들의 피와 땀, 한이 서린 역사의 공간이다. 모양도 가지가지다. 밑에서 보기에는 밋밋한 포물선으로 보이지만 정상에 올라가면 그제야 오름의 진면목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화산 폭발의 현장을 생생히 보여주는 분화구는 화성처럼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을 준다.
“오름에 대한 이해는 곧 제주의 풍수를 알게 되는 지름길입니다. ‘오름에서 태어나서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제주사람들은 영험한 기맥의 발원지인 한라산을 종산(宗山)으로 삼고 땅 기운이 용출하는 오름 곳곳에 삶의 터전을 형성하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마을 대부분이 오름에 의지한 채 들어서 있습니다. 오름은 팔방에서 불어오는 살풍(殺風)을 안정시키고 섬 특유의 허(虛)한 자세를 보완해주는 비보(裨補·도와서 보충함) 풍수의 역할을 합니다.”
오름에서 명당 묏자리를 찾는 일이 고작이었으나 신 교수가 풍수 관점으로 해석하면서 오름은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풍수를 알기 위해 368개 오름을 모두 올랐다. 1개 오름을 20번 이상 오르기도 했다. 제주의 지맥은 한라산에서 동서남북으로 하천과 오름을 경계로 흘러간다. 9개의 지맥 가운데 제1맥은 한라산 동쪽의 사라오름에서 성판악, 궤펜이, 거문오름, 붉은오름, 소록산, 대록산, 따라비, 모지악, 영주산, 남산봉으로 이어진다고 봤다. 9개 지맥 각각이 모두 저마다 특징이 있다고 해석했다.
“한라산으로부터 뻗어 내린 지맥이 사방에 산재한 오름으로 이어져 곳곳에 혈(穴)을 맺게 합니다. 오름과 오름 사이로 기운의 경계를 가르는 물줄기가 형성돼 산수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름은 사방의 지세와 어울려 주민들의 생활과 정신적인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신 교수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의 핵심지역인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서 거문오름에 대해 ‘구룡(九龍)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상으로 전후좌우로 봉우리가 비밀스러운 곡선을 이루며 능선으로 에워싸니 속세와 차단돼 고상한 은자가 깃들어 살 만하다’는 이야기를 입혔다. 그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제주관광대 평생교육원에서 ‘풍수지리’를 강의하고 있다. ○인간성을 회복하는 힐링 풍수
그의 이력은 풍수에 그치지 않는다. 주역, 사주명리학, 단학, 관상법, 기공, 명상 등을 연구했다. 자연을 노래하기 위해 ‘한시(漢詩)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 태극권에 입문한 뒤 중국에서 태극권 명사인 왕민강 선생을 만나 사사했으며 지금도 매일 아침 태극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충북 음성군 감곡면 오지마을에서 태어난 신 교수는 어릴 때부터 도학, 도술, 기문둔갑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고교시절 중국 전원시인 도연명의 시집을 접하고 ‘중국고전문학’ 연구를 인생 목표로 삼았다. 호텔 웨이터부터 시작해 영업책임자로 오르는 동안 틈틈이 독학으로 중국어를 익혔고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역술, 풍수 등을 배웠다.
제주는 1992년 신규 호텔 영업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당시 제주의 풍수에 관심이 많았지만 도무지 제대로 된 해석을 내놓지 못했다. 능선으로 이어진 육지의 산세와는 판이했기 때문이다. 수없이 한라산을 등반하고 오름을 오른 뒤에야 오름이 풍수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제주의 맥이 백두대간과 이어졌다고 본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기운이 한라산에서 솟아나는 형상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를 ‘선곤후유(先困後裕)’로 표현했다. 과거 유배지, 버림받은 땅으로 힘들었지만 나중에 부각된다는 것이다. 최근 제주에 대한 관심이나 이주민이 많아진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했다.
“오름은 제주의 젖줄이자 생명입니다. 쿵쿵거리는 굴착기 소리가 들리면 오름이 파괴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그래서 자연에서 에너지를 얻어 파괴된 인간성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힐링 풍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힐링 풍수의 중심이 오름입니다. 과거,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의 제주 가치를 드높일 소중한 자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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