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이후 프랑스는 빠른 속도로 상업화되었습니다. 봉마르셰를 시작으로 백화점 개점이 잇따랐고, 상점도 늘었습니다. 유리와 대리석 장식이 화려한 새로운 소비 공간들이었지요.
제임스 티소(1836∼1902)는 당대 사회의 변화를 파리 여인들 연작에 담았습니다. 번화가에 위치한 패션용품점 점원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상점 쇼윈도에 판매 주력 상품인 여성복과 패션 소품인 레이스, 조화, 리본이 내걸렸군요. 복잡한 상점 실내에 두 명의 점원이 눈에 띕니다. 당시 새롭게 부상한 계층이었습니다. 성별과 판매 품목에 따라 명칭도 달랐어요. 패션용품점 남성 점원은 칼리코, 모자상점 여성 점원은 모디스트라 불렸습니다.
쇼핑을 마친 구매자가 이제 막 상점을 떠나려는 모양입니다. 점원 한 명이 포장 상품을 든 채 가게 문고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림에 고객은 없습니다. 손님의 성별도, 구매품의 용도도 알 길이 없습니다. 그저 그림 속 정황으로 고객 배웅의 순간임을 짐작할 뿐입니다. 소비 공간에서 구매자의 안락함이 중요해지던 때였지요. 점원들은 몸단장과 복장 청결에 각별히 신경 써야 했습니다. 눈길과 태도는 항상 부드러움과 예의바름을 유지해야 했지요. 상대방 귀에 거슬리는 말이나 인상을 찌푸리는 일은 있을 수 없었어요.
소비 사회에서 물건뿐 아니라 사람도 잠재적 상품이 되어 갔습니다. 상점 바깥에서 남성이 쇼윈도 너머로 가게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남성은 잘록한 허리선이 강조된 드레스를 입은 또 한 명의 점원을 뚫어져라 응시합니다. 당시 몇몇 고객의 상점 방문 목적은 물품 구입이 아니었습니다. 패션용품점은 속옷가게와 함께 매춘을 위한 위장 점포로 운영되기도 했거든요. 그림 속 상점은 쇼윈도에 진열된 상품 판매의 공간이었을까요, 아니면 테이블 아래 떨어진 하트 모양 리본이 암시하듯 욕망 탐닉의 장소였을까요.
한국의 해를 맞아 프랑스에서 한류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행사 대행사가 현지 통역사를 모집하며 출중한 외모를 자격 조건으로 내걸었답니다. 관련 분야에서 실력을 키워 온 지원자에게 전신사진 요청도 했다지요. 이해 불가능한 채용 기준입니다. 국제 행사가 그림 속 패션용품점처럼 비칠까 봐 걱정됩니다. 힘겹게 사회 진출을 준비 중인 수많은 남녀가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이 부디 키와 몸무게는 아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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