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오전 직장인 A 씨는 도로 한복판에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섬뜩한 경험’을 했다. 서울 송파구 양재대로를 달리던 A 씨의 차량 뒤로 갑자기 한 차량이 바싹 따라붙기 시작했다. 운전자 김모 씨(63)는 진로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A 씨의 차량 옆에서 아슬아슬한 주행을 이어가며 창문 너머로 욕설을 퍼부었다. 김 씨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급기야 A 씨의 차량을 추월해 차를 멈춰 세웠다. 추돌사고가 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도로 한복판에서 ‘위험천만 분풀이’를 한 김 씨는 완전범죄를 꿈꿨지만 보름도 안 돼 경찰에 붙잡혔다. 김 씨의 범행을 포착한 건 경찰의 폐쇄회로(CC)TV가 아니었다. 이날 현장상항은 A 씨의 차량에 부착된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녹화됐고 A 씨는 이를 토대로 국민신문고에 보복운전 신고를 했다.
최근 차량용 블랙박스와 스마트폰의 촬영 기능을 이용해 교통법규 위반자를 신고하는 이른바 ‘시민 감시자’가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4월에는 경남 창녕군의 한 고속도로에서 보복운전을 일삼던 한 40대 여성이 뒤따르던 차들의 5중 추돌사고를 야기한 채 도주했지만, 주변 운전자의 블랙박스 영상에 덜미를 잡혀 구속되기도 했다.
14일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현재(5월 기준) 경찰에 접수된 교통법규 위반 공익신고 건수는 총 38만9677건으로 집계됐다. 지난달까지 올해만 하루 평균 2500여 건의 신고가 접수된 셈이다. 신고건수는 2014년(11만901건)과 2015년(22만4764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이 4, 5월에 걸쳐 실시한 난폭·보복운전 집중단속 기간 중 국민신문고 등 인터넷을 통해 받은 시민 제보건수는 전체 신고건수의 74%를 차지했다.
최근 이 같은 ‘도로 위 감시자’들이 늘고 있는 것은 법을 준수하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시민의식 제고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관행적으로 눈감았던 불법행위들에 대해 시민들이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며 적극적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준법의식 강화와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기기의 발달이 영향을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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