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대 보부상단 총회 재현행사
충남 홍산 일대서 17, 18일 열려… 보부상 행렬-줄타기 등 보여줘
‘충남 홍산면에는 아직까지도 보부상의 두령인 영위(領位)의 맥을 이어오고 있고 보부상들의 애환이 담긴 유품과 노래들이 전해져 보부상에 대한 민중사학으로서의 학문적 연구가치도 충분하다.’
얼마 전 작고한 동아일보 정상희 지역 담당 기자가 1989년 4월 18일자 동아일보 13면(전국면)에 크게 소개한 ‘천년 이어온 부여 보부상’ 기사의 일부다. 정 전 기자는 당시 81세로 홍산을 포함한 8개 읍의 보부상을 거느린 저산팔읍상무사의 마지막 영위 김재련 옹을 인터뷰했다. 한때 전국 최대의 보부상단이었으나 1969년 5월 1일 마지막 공문제(총회)를 마친 뒤 점차 사라져 가던 저산팔읍상무사를 아쉬워한 기사였다. 37년 만에 처음으로 이 지역 주민들로 이뤄진 홍산보부상보존연구회가 17, 18일 홍산 동헌과 장터 일원에서 ‘보부상 꿈을 꾸다’를 주제로 공문제를 재현하는 행사를 갖는다.
○ 전국 최고 상단 ‘부여 보부상’ 아세요?
‘장돌뱅이’ 또는 ‘등짐봇짐장수’라고 불리는 보부상(褓負商)은 조선시대와 광복 후까지도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서민경제의 핵심 역할을 해왔고 충남 서남부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세명대 이창식 교수는 저서 ‘한국의 보부상’에서 “충남에 전승하는 보부상 노래 구절의 ‘태조대왕 등극 후에 우리 생명 건져냈고’로 미뤄 보부상은 원시시대부터 있었으나 이성계의 개국에 공헌하면서 본격 조직을 허용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기술했다. 일제는 보부상이 생존을 위해 협력을 해온 경우도 있었지만 막대한 조직을 바탕으로 상권을 장악해 나가는 것을 우려해 마침내 조직을 말살했다. 충남에는 저산팔읍상무사(홍산, 임천, 부여, 정산, 한산, 서천, 남포, 비인)와 원홍주육군상무사(홍주, 청양, 어천, 보령, 광천, 대흥), 예덕상무사(예산, 덕산, 당진)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모시를 기반으로 한 저산팔읍상무사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고 오래 존속됐다.
앞서의 기사에는 저산팔읍 가운데 하나인 홍산지역 보부상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나온다. ‘홍산면 상천리 야트막한 야산등성이에 3기의 무연고 보부상 분묘가 있다.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만발하는 4월 24일이 되면 이 무덤에 부여 일원에서 2000여 명의 보부상 후예들이 찾아와 경건하게 제사를 지내 장관을 이룬다. 구한말 등짐을 지고 가다 거리에서 얼어 죽은 김상기 등 3명의 보부상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제사다.’
○30년 만의 화려한 홍산상무사 재현
마지막 영위 김 옹은 1964년 저산팔읍상무사를 법인화한 데 이어 그 이듬해 보부상의 재중흥을 도모해 서천 길산시장에서 대규모 공문제를 개최했다. 하지만 불과 4년 후 마지막 공문제를 지내야 할 만큼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 이후 공문제는 민속 재현행사로만 남았는데 그마저 신차영감행차놀이 같은 일부 행사만 선보였다. 이번에 열리는 공문제는 보부상 행렬과 임원선출, 공문제례, 비나리, 줄타기, 신차영감행차놀이 등 모든 행사를 재현한다. 공문제는 보부상의 가장 큰 행사일 뿐 아니라 투표로 임원을 선출하고 정기총회를 열어 안건을 결정하는 민주적인 운영방식 때문에 더욱 주목을 모은다. 충남문화재단은 16일 ‘보부상 전통문화 학술세미나’를 충남개발공사에서 연다. 이정구 홍산보부상보존연구회장은 “저산팔읍상무사의 공문제는 보부상 총회 가운데 처음으로 지방문화재로 지정됐고 이 상무사의 보부상 유품은 국립부여박물관에 민속자료 30호로 보관돼 있을 정도로 유서 깊다”며 “이 소중한 민속 문화를 더욱 연구하고 발전시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번 공문제에 가면 보부상들이 전국의 장터를 누비며 흥얼거렸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계화 계화 계화자 좋소/태조대왕등극후에 우리생명 건져냈소/영위대감 반수영감 우리가 살면 몇백년을 사나요/죽음으로 보은 충성합시다.’ 축제 문의 041-830-6511(홍산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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