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지하상가 매입 리모델링… 당구장-탁구장-강의실 등 꾸며
가입비 1만원만 내면 무료 이용… 주머니 가벼운 어르신들의 천국
“옛날에 내가 당구 좀 쳤는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네. 허허허.”
17일 오후 서울 노원구의 한 상가건물 지하에서 김광웅 할아버지(75)가 멋쩍은 듯 웃음을 터뜨렸다. 김 할아버지는 지난달부터 매일 이곳에서 하루 3, 4시간 당구를 즐긴다. 50년 전 처음 당구를 배워 150점의 실력을 가졌지만 지금은 100점 정도다. 실력은 예전만 못해도 공을 바라보며 집중하는 모습이나 큐를 잡는 자세만큼은 프로선수 못지않았다.
당구장에는 김 할아버지처럼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 50여 명이 당구 삼매경에 푹 빠져 있었다. 평일 오후인데도 사구, 포켓볼 등을 칠 수 있는 당구대 6개에선 경기가 한창이었다. 이용자 모두 70, 80대 어르신이다. 당구장 여기저기선 심심풀이 삼아 사탕이나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등 간식거리를 걸고 내기를 하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경기 순서를 기다리며 집에서 챙겨온 옥수수, 떡 등을 나눠먹고 자녀들 이야기도 나눈다. 장현달 당구동호회장(82)은 “부담 없이 운동도 하고 사람도 만날 수 있다”며 “노인들이 쉬고 여가를 즐기기에 딱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곳의 이름은 ‘온수골 행복발전소’. ‘주민들 모두가 부담 없이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만드는 곳’이라는 뜻이다. 올 4월 문을 열었지만 회원이 벌써 130명을 넘었다. 처음 가입할 때 1만 원만 내면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에 무료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어르신들에게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최근에는 당구가 치매 예방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할머니들의 가입이 부쩍 늘었다.
행복발전소가 들어선 지하상가는 지은 지 30년이 넘어 천장 배관은 부식됐고 물이 새 바닥이 흥건하거나 잠기기 일쑤였다. 구조물이 낡아 안전사고 위험도 컸다. 오랜 기간 청소도 하지 않아 퀴퀴한 지하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관리도 쉽지 않아 사실상 건물은 흉물스럽게 방치됐었다.
노원구는 주택가의 부족한 여가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2년 전 8억7000만 원을 들여 이 건물의 지하공간을 매입했다. 이후 지하실에 가득했던 쓰레기를 치우고 석면 등 건강을 위협하는 노후 설비를 철거했다. 안전진단을 실시한 뒤 환기구를 새로 설치하는 등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했다. 거동이 불편한 주민을 위해 휠체어 리프트도 설치했다.
이렇게 탄생한 670m² 규모의 온수골 행복발전소에는 당구장을 비롯해 탁구장 강의실 등이 들어섰다. ‘어린이 바둑’ ‘퀼트 공예’ 등 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10여 개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문화 체험과 소통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는데 행복발전소가 문을 열고 난 뒤 주민들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며 “주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가겠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