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받아 보고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수많은 퇴직자가 이런 말과 함께 오늘도 한숨을 내쉰다. 회사를 관두고 고정 수입이 없어졌는데도 건강보험료가 직장에 다닐 때보다 2배 가까이로 올랐기 때문이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을 중심으로, 지역가입자는 소득 외에 재산, 자동차, 성, 연령을 반영해 건보료를 내는 부과체계 탓에 형평성 논란이 수십 년간 지속 중이다. 이에 보험료 부과 방식 개편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는 상·하에 걸쳐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움직임과 올바른 개편 방향을 알아본다. 》
20대 국회의 출범과 함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논란이 점화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구분 없이 모든 소득에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30일 발표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역시 개편안을 마련 중이다. 여소야대 구조의 20대 국회가 시작된 만큼 올해 안에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일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다.
○ 더민주당, 차등 없애고 ‘개선’에 방점
더민주당 정책위원회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청회를 열고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안을 공개했다.
개편안의 주요 내용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차등을 없애는 것. 지역가입자에게만 적용됐던 재산, 자동차, 성, 연령 등 경제활동참가율을 보험료 부과 요소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모든 가입자에게는 ‘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동일한 부과 기준이 적용된다.
보험료 부과 대상 소득은 근로소득(보수)을 비롯해 △사업, 이자, 배당, 연금, 퇴직금, 양도, 상속, 증여소득 △소득세법상 2000만 원 이하 금융소득 △일용근로소득, 기타 소득 등이다. 피부양자 제도 역시 폐지한다.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된 인원(2000여만 명·전체 가입자의 약 40%) 중 재산이 많은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 소득이 없는 피부양자나 무소득 가구는 최저 보험료가 부과된다.
발표를 맡은 김종대 정책위원회 부의장(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보험료 부과 대상 소득을 개편안에 적용해 보니 전체 가입자의 90% 이상의 보험료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다만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 214만 명과 다른 소득이 있는 직장인 가입자 등은 5∼10% 보험료가 올라가게 된다.
더민주당의 안처럼 개편되면 보수월액(월급여) 보험료 수입은 28조9885억 원으로, 현재 직장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보다 7조7311억 원 감소한다. 하지만 더민주당 측은 “월급 외 소득 7조9933억 원, 퇴직소득 1조96억 원, 이자소득 1조1795억 원 등이 추가로 걷혀 보험 재정 중립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공청회에서는 2014년 생활고에 시달리던 ‘송파 세 모녀가 소득이 없는데도 전월세가 재산으로 간주돼 매달 5만 원의 보험료를 꼬박꼬박 냈던 사례, 수백억 원대 자산가가 월급쟁이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보험료를 내지 않는 관행도 거론됐다.
공청회 소식이 알려지면서 건보 가입자들은 부과체계 개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서울의 자영업자 김모 씨(43)는 “직장을 나온 후 월 6만 원대이던 건강보험료가 18만 원대로 올랐다. 지역가입자가 됐기 때문”이라고 하소연했다.
○ 정부는 현실성 고려하며 주저
더민주당의 안이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의 해답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공청회에 참석한 이상철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본부장은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소득이 없으면 건보료를 안 내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김재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직장, 지역 가입자로 나눈 것은 소득 파악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이론적으로는 이상적이지만 소득을 파악해 100% 보험료를 징수한다는 더민주당 안의 기본전제는 현실성이 작다는 입장이다. 강도태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은 “피부양자와 직장가입자의 부담이 너무 커질 수 있다. 양도소득, 퇴직소득에 보험료 부과 시 서민에게 부담이 가중될 수 있는 부작용 등 검증할 내용이 많다”며 “정부 개편안은 점진적 개선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 개편안도 올해 안에 발표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더민주당의 안과 상호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2013년 7월 건보부과체계개선단을 발족해 1년 반 넘게 개선안을 검토했다. 지난해 초 금융소득, 연금소득을 건보에 반영한다는 내용의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전면 취소해 논란이 됐다. 현재 정부는 직장, 지역가입자 이원화 및 재산 보험료는 유지하되 지역가입자의 재산에 매기는 보험료를 점진적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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