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태양은 가득히’ 주인공처럼 서명, 영사기로 비춰 베껴쓰기 연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4일 03시 00분


[심층탐사기획/프리미엄 리포트/위작에 멍드는 미술계]
이우환 그림 위조범들 수법 보니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위작 관련 수사 과정에서 압수한 그림 중 13점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원에 과학감정을 의뢰해 위작이라고 결론 내렸다. 지난달 구속된 위조총책 현모 씨(66)는 1991년에 천경자 씨의 그림을 위조한 혐의로, 1995년에는 단원 김홍도 등 조선시대 작품을 위조해 유통한 것이 적발돼 구속된 전력이 있다. 현 씨는 이번에 이우환 씨 위작을 그린 화가 이모 씨(39)와 함께 그림과 서명을 정교하게 위조하는 방법을 경찰 조사에서 세세히 재연했고 경찰은 이 동영상을 공개했다.

우선 위조 과정에서 작가의 서명을 따라 쓴 방법은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년)의 주인공 리플리가 자신이 살해한 갑부의 서명을 연습한 방법과 같다. 진품의 서명을 촬영해 그 이미지를 영사기로 캔버스에 비춘 뒤 그것을 그대로 따라 연습했다는 것이다.

현 씨는 또 자신이 그린 위작을 알아본 방법으로 캔버스 제작 방법을 들었다. 위조범이 자신들이 그린 것으로 지목한 4점은 못과 본드를 사용해 면포를 나무틀 옆면에 고정한 방식으로 제작됐다. 테두리에 흰 물감을 둘러 바른 특징에서도 공통점을 보인다. 서울 동대문구의 현 씨 소유 화랑에서 못을 소금물에 담가둬 오랜 세월을 거치며 녹슬고 변색된 것처럼 변형시켜 사용한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경찰은 또 국과수에 의뢰해 진품 6점과 위작을 대조 분석했다. 위조범들은 “진품처럼 그림 표면이 반짝이는 효과를 내기 위해 대리석 가루와 유리 가루를 안료에 섞어 작업했다”고 진술했다. 실제 국과수 분석에서도 위조범들이 인정한 4점에서 유리 파편이 검출됐다. 진품에서는 유리 성분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우환 씨는 기자회견에서 “나는 안료에 유리 가루 같은 이물질을 섞어 써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실물 확인 뒤 진품이라 주장한 위작 의심 그림에서 유리 성분이 검출된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그저 “그런 건 난 모르겠다. 그냥 작가가 보고 내 작품이라 하면 그런 거다”라고 답했다.

위조범들이 구입해 사용한 재료인 석채(石彩) 물감 성분 역시 알루미늄, 규소, 크롬, 코발트, 납 성분 비율이 위작에 쓰인 안료의 성분 비율과 거의 일치했고 진품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는 게 경찰 측의 설명이다.

경찰은 이우환 씨가 “모두 진품”이라고 주장한 직후 “위조품이라는 결론으로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불구속 상태였던 그림 담당 이 씨도 3일 구속했다. 위조범의 꼼꼼한 거짓말에 경찰 수사팀이 모두 속아 넘어간 것인지, 아니면 위작 증거를 작가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 진실은 그 둘 중 하나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이우환#그림#위조범#수법#서명 베껴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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