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오후 인도양 세이셸 군도에서 동북쪽으로 1100km가량 떨어진 해상. 지난해 2월 부산 감천항을 출항한 한국선적 참치잡이 원양어선 광현803호(138t)에서 조촐한 술자리가 마련됐다. 조업을 마친 뒤 선장 양모 씨(43)가 선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광현803호에는 양 씨를 비롯해 기관장 강모 씨(42), 항해사 이모 씨(50) 등 한국인 3명과 베트남인 7명, 인도네시아인 8명 등 총 18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양 씨는 “무더운 날씨에 일하느라 고생했다”며 양주 5병을 꺼냈다. 베트남 선원 A 씨(32)와 B 씨(32)는 “요!, 요!”를 외치며 다른 선원들과 술잔을 부딪쳤다. 베트남어로 ‘요(yo)’는 건배를 뜻한다. 그러나 이들이 반말을 한 것으로 오해한 양 씨는 주의할 것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양 씨와 A 씨가 말다툼을 벌였고 급기야 술에 취한 A 씨가 선장의 뺨을 때리는 등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결국 화가 난 양 씨는 베트남 선원들에게 “조타실에 모여라”라고 명령한 뒤 먼저 이동했다. 함께 있던 강 씨는 침실로 갔다.
하지만 A, B 씨는 “선장과 기관장을 함께 살해하자”고 다른 5명의 베트남 선원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선원들은 이들이 들고 있던 흉기를 뺏어 바다에 던지며 제지했다. A, B 씨는 분을 참지 못하고 식당에서 다른 흉기를 들고 나와 조타실로 향했고 양 씨를 살해한 뒤 자고 있던 강 씨마저 살해했다.
유일한 한국인 생존자였던 항해사 이 씨도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 A 씨는 이 씨에게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행동을 해 보이며 갑판 위로 나오라 손짓했다. 이 씨는 격한 몸싸움 끝에 A 씨의 흉기를 빼앗아 제압한 뒤 뒤따라 나온 B 씨도 제압했다. 이 씨는 다른 외국인 선원들을 시켜 이들을 침실에 몰아넣고 감시하도록 조치한 뒤 선사에 알렸다.
부산해양경비안전서가 부산과학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한 결과 양 씨는 총 15곳, 강 씨는 8곳을 흉기로 찔린 것으로 드러났다. 사인은 과다 출혈로 추정됐다. 해경은 한국인 선원이 외국인 선원들에게 욕설을 한 적은 있지만 폭행한 적은 없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3일 밝혔다. 다만 가해자인 A, B 씨는 의사소통 문제 등으로 한국인 선원과의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달 초 빅토리아 항 입항 때도 한 차례 무단이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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