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 막을 기회 정부와 기업, 6차례 놓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6일 03시 00분


[‘가습기 살균제 참사’ 막을 수 있었다]<上> 어이없이 놓친 골든타임

《 정부도, 기업도 막을 수 있었다. 동아일보가 사건을 추적해 온 전문가들과 함께 가습기 살균제가 등장한 1994년부터 수거 명령이 내려진 2011년까지 정부와 화학기업이 남긴 관련 문건들을 분석한 결과 수백 명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 적어도 6차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 과연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나. 20대 국회의 첫 국정조사가 7일 시작된다. 》
 

○ SK케미칼 ‘죽음부른 독성물질’ 10년간 납품… 비극의 시작

가습기 살균제는 2011년 8월 수거되기 전까지 17년간 우리의 일상에 숨어 소중한 목숨을 야금야금 앗아갔다. 지난달까지 접수된 피해자가 3698명, 사망자가 698명이다. 이 과정에 관여한 업체와 정부 부처, 유관기관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살균제의 확산을 막지 못한 원인은 무엇일까. 책임을 규명해야 할 업체 및 정부기관 5곳을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장, 송기호 변호사, 조윤미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등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했다.

① ‘살인 물질’ 10년간 납품한 SK케미칼


최악의 피해를 낸 가습기 살균제는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다. 정부의 1, 2차 피해조사에서 사망자가 102명으로 집계됐다. 옥시가 2001년 제품의 주성분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으로 변경하면서 흡입 독성 시험을 생략한 게 사건 ‘원흉’으로 꼽힌다. PHMG를 사용한 제조사 3곳은 이번에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런데 정작 이들에 PHMG를 공급해온 SK케미칼은 수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SK케미칼은 “PHMG에 흡입 독성이 있는 줄도, 해당 물질이 옥시에 납품되고 있는 줄도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SK케미칼이 2003년 PHMG를 SK글로벌(호주법인)로 수출하려 할 당시 호주 화학당국이 ‘분말 흡입 위험’을 언급한 바 있기 때문이다. 조윤미 대표는 “SK케미칼이 어떤 경로로든 PHMG의 흡입 독성을 파악하고 있었다면 가습기 살균제 용도로 납품해 온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② 첫 단추 잘못 끼운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당시 노동부)는 1996년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SK케미칼(당시 유공)로부터 PHMG의 호흡기 과민성, 급성 독성 등을 조사한 ‘유해성·위험성 보고서’를 제출받았어야 한다. 하지만 고용부는 5일 “SK케미칼이 이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기록이 현재 남아 있지 않다”며 “애초에 받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당시 고용부가 PHMG의 흡입 독성 자료 제출을 강력히 요구했다면 옥시 등에 사용된 PHMG를 처음에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고용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크게 불거진 2011년 10월에야 PHMG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처음으로 작성했다.

③ ‘에어로졸’인데 흡입 독성 평가 안 한 환경부

환경부는 2003년 한 업체가 고무·목재 보존제로 쓰겠다며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에 대한 유해성 심사를 신청했을 때 피부와 경구 독성만 평가한 뒤 ‘유독물이 아니다’라고 고시했다. 주요 용도로 ‘스프레이, 에어로졸 제품 등에 첨가’가 명시돼 있었지만 흡입 독성은 시험하지 않았다. 6년 후 중소업체 버터플라이이펙트는 별다른 제약 없이 PGH를 원료로 ‘세퓨’를 출시했다. 세퓨는 다섯 번째로 많은 사망자(14명)를 낸 가습기 살균제다. 한 전문가는 “환경부나 국립환경과학원이 흡입 독성 자료를 요구했다면 그 14명은 지금도 숨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④ ‘자율안전확인’ 마크 달아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정한 안전검사 기관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은 2007년 8월 코스트코의 ‘가습기클린업’에 ‘자율안전확인’ 마크를 달아줬다. 당시 연구원이 수행한 시험은 제품을 일정 높이에서 떨어뜨려도 내용물이 새지 않는지, 염산·황산 등 포함 여부였다. 가습기클린업의 주성분이었던 PHMG에 대한 검사는 없었다. 이처럼 산업부가 ‘안전’ 마크를 부여한 가습기 살균제 6종 중 2종 때문에 사망자 2명과 환자 16명이 발생했다. 황당하게 산업부는 폐 질환의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가 지목돼 보건 당국이 역학조사를 진행하던 2011년 6∼8월에도 신규 가습기 살균제 2개에 ‘안전’ 마크를 추가로 부여했다.

⑤ 현장 조사하고도 원인 못 밝힌 질병관리본부

질병관리본부는 2006년부터 의학계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급성 간질성 폐렴이 보고되자 2008년 4월 서울아산병원에서 환자 9명의 사례를 검사했다. 하지만 이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2011년 8월 2차 조사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폐질환의 원인물질로 추정된다고 결론 냈다. 2009∼2011년 3년간 발생한 환자는 2006∼2008년의 7배가 넘는다. 질병관리본부가 초기에 정밀한 역학조사 결과를 내놨다면 대규모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질병관리본부는 옥시 다음으로 많은 사망자(27명)를 낸 ‘가습기메이트’의 주성분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에 대해 제대로 된 추가 연구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는다.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안전성평가연구원에 PHMG, PGH뿐 아니라 CMIT, MIT의 흡입 독성 동물실험을 의뢰했다. 당시 연구진은 촉박한 실험 기간 탓에 CMIT, MIT에 대해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이 같은 결과를 받아 들고 PHMG, PGH를 원료로 한 제품 6개만 수거하도록 한 뒤 CMIT, MIT에 대해선 추가 연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이는 현재까지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한 SK케미칼 등의 방어 논리로 활용되고 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sk케미칼#독성물질#가습기#살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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