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거리공연 성지’ 홍대앞 우후죽순 공연

“수준 낮은 팀 솎아내야” vs “오디션 도입? 본질 훼손”

지난달 16일 오후 8시 서울 마포구 ‘홍대 걷고 싶은 거리’. 10여 명으로 구성된 댄싱 팀이 음악을 틀어 놓은 채 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표정은 썩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댄싱 팀 대부분이 어색하게 쭈뼛거리거나 서로 잡담을 나눌 뿐 제대로 된 공연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발길을 멈췄다가 “뭐 하는 거야”라며 가 버리는 행인이 부지기수였다.

얼마 떨어지지 곳에서는 남성 2인 1조 두 팀이 노래방 기기 반주에 맞춰 각각 최신 발라드 곡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채 가사를 외우지 못했는지 연신 손에 든 스마트폰 화면을 힐끔거렸다. 기타와 젬베(손으로 연주하는 타악기)를 든 두 팀은 근소한 시간 차로 서로 짜기라도 한 듯 미국 가수 제이슨 므라즈의 히트곡 ‘아임 유어스(I’m yours)’를 불렀다. 지켜보던 이모 씨(33)는 “전에는 앰프도 없이 자작곡을 불러 볼만했는데 요즘은 비슷비슷한 유행가가 대부분이고 소리만 큰 것 같다”라고 말했다.

‘버스킹’이라 불리는 거리 공연으로 ‘언더’에서 스타로 발돋움한 이들이 하나둘 탄생하면서 ‘버스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홍대 걷고 싶은 거리는 서울의 버스킹 장소 중에서도 성지(聖地)로 꼽힌다. 서울시와 마포구는 올해 11월까지 자유로운 버스킹 문화를 권장하기 위해 공연 공간과 전기 공급 시설 등을 설치한다는 계획도 최근 내놓았다.

하지만 버스킹이 유행하면서 본연의 목적인 자신의 작품을 알리는 것보다 그저 ‘관심 끌기’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10여 개 버스킹 팀 가운데 직접 만든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하는 팀은 단 하나에 그쳤다. 10m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팀 간 거리 때문에 소리가 겹치는 일도 많았다. 한 인디뮤지션은 “기본도 못 갖춘 실력으로 버스킹 횟수에만 집착하는 ‘자칭 뮤지션’도 없지 않다”며 “듣는 관객으로선 고역”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버스킹 오디션’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영국이나 프랑스, 체코 등 유럽 국가들은 버스킹 존을 정해 놓고 심사를 통과한 팀만 일정 시간 공연할 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최소한의 검증을 통해 역량이 달리는 팀이나 획일적인 레퍼토리를 걸러 내고,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버스킹의 본질인 ‘자유로움’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홍대 거리를 관할하는 마포구는 명목상 허가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마포구 관계자는 “공연의 질은 따지지 않고, 특정 종교나 이념, 사회 풍속을 해치지 않으면 공연 허가를 내준다”며 “허가 신청이 없는 공연도 굳이 개입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