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장남만 주고, 장녀는 안주는 가족수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6일 03시 00분


최근 종영된 인기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 짬뽕집의 60대 여사장 장난희(고두심)가 나온다. 그는 간암 말기란 판정에 ‘맏딸 콤플렉스’를 터뜨린다. 늙은 친정부모 챙기랴, 하반신 장애인 남동생의 병원비 대랴 늘 무거운 책임감에 시달린 난희. “왜 나한테 (병을) 말 안했느냐”고 딸이 묻자 “말하면 뭐가 달라지냐”며 통곡의 한탄을 늘어놓는다. “내가 안 짊어지면 다들 진작 죽었다. 딸년 있어도, 엄마 아버지 형제 있어도 다 내 짐이다. 내가 죽는다고 해도 난 의지할 데가 없다.”

▷사전에 따르면 맏딸의 정의는 ‘둘 이상의 딸 가운데 맏이가 되는 딸’이지만 일상에선 난희처럼 남매 중 먼저 태어난 딸도 맏딸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이 땅의 맏딸은 장남처럼 특별대접을 받는 것도 아니면서 맏아들 못지않은 의무감으로 부모와 동생들을 챙기며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산 경우가 많다. 맏딸은 결혼한 뒤에도 친정과의 관계에서 다른 딸과는 다르다. 한국 여성의 7가지 콤플렉스에 ‘맏딸 콤플렉스’가 꼽히는 이유다.

▷지방자치단체 산하 A공사에 근무하는 이모 씨(29)는 어머니에 대한 가족수당을 청구했다 거절당한 뒤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 공사는 관련 규정에 의해 부모와 따로 사는 장남에게는 가족수당을 지급하되 여성에게는 무남독녀에 한해 수당을 주었다. 이 씨는 장녀인 데다 남동생이 학생이라서 실질적으로 가족부양을 맡고 있었다. 인권위는 ‘평등권 침해’라며 공사의 보수 규정 개정을 권고했다. 직계존속의 부양은 남성이 책임진다는 전통적 성역할에 따른 명백한 차별이란 관점이다.

▷A공사는 불합리한 가족수당 규정에 대해 ‘동종 기관 대부분이 다 그렇게 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동종 기관’들도 하루속히 장녀차별을 바로잡아야 한다. 사회 변화에 따라 가족의 개념과 형태는 달라지고 있으나 현실 변화는 그 속도를 못 따라잡는 것 같다. 한쪽에선 알파걸 시대를 얘기해도 막상 사회에 진출하면 사소한 ‘규정’들이 일하는 여성의 발목을 잡는다. 아직도 머나먼 길이 그들 앞에 놓여 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가족수당#장녀#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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