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5시 넘으면 ‘눈치’… 말뿐인 종일보육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8일 03시 00분


맞춤형 보육 1주일… 어린이집 현실은

맞춤형 보육이 시작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달라진 게 없다는 학부모 불만이 쏟아지고 있어 보건복지부가 어린이집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전국 어린이집에 학부모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운영계획서’를 만들어 원내에 비치하라는 공문을 6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전국 어린이집은 설문을 통해 학부모들이 원하는 종일반, 맞춤반 운영 시간을 조사해 학부모 의견을 토대로 어린이집 이용 시간이 탄력적으로 적용된 운영계획서를 만들고 이를 시행해야 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침 형식으로 전달한 것이기 때문에 어린이집도 따라야 한다”라며 “이를 어기면 어떤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는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 종일반 아동도 오후 4∼5시 모두 귀가

“기대가 많았는데 모든 게 그대로예요. 어휴, 이게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요?”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 씨(32·여)의 말이다. 오후 5시만 넘으면 김 씨 마음은 다급해진다. 15개월 된 아들이 어린이집에 혼자 남겨져 있다는 불안감 때문. 당초 김 씨는 ‘맞춤형 보육’을 누구보다 반겼다. 하지만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김 씨는 “말이 종일반이지 여전히 오후 4, 5시만 되면 아이들을 하원시키고 있다”며 “우리 아이만 7시 반까지 있다 보니, 어린이집 눈치가 보여 다시 이모(보육 여성)를 고용해 오후 5시면 데려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맞춤형 보육 도입 후 취재팀이 찾은 서울 강남의 한 가정어린이집은 종일반 아동이 90%이지만 오후 3시부터 1시간 동안 모든 아이가 귀가했다.

맞춤반을 이용하는 전업주부도 불편함을 호소했다. 2세 딸을 어린이집에 맡기는 전업주부 이모 씨(37)는 “원래는 오전 10시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오후 4시에 데려왔다. 어린이집 측에서 ‘불편하지 않으려면 바우처를 써서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용하라’고 강요했다”고 말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맞춤반은 오전 9시∼오후 3시 등의 기준 시간이 있지만 학부모와 협의 후 앞뒤로 1시간은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그럼에도 기준 시간을 고수하면서 부족한 시간은 바우처를 사용하도록 종용하는 어린이집이 적지 않다. 15시간의 바우처를 다 사용하면 보육료가 종일반의 97∼99% 수준으로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복지부가 기본 보육료를 종일반 수준으로 맞춰 주면서 맞춤반 아동에게도 오후 간식을 제공해야 한다고 했지만 일부 어린이집에선 바우처를 사용해야 오후 간식을 주겠다며 횡포를 부리고 있다.

○ 관행 안 바꾸는 어린이집의 횡포

정부는 이런 혼란 중 상당 부분은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데도 어린이집들이 ‘관행적’으로 부모들에게 고정된 시간을 강요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판단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학부모에게 원하는 이용 시간을 물어 만든 운영계획서를 잘 시행하는지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조해 정기적으로 모니터링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나 카페 게시판에는 “많은 어린이집이 ‘원래처럼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인식하에 정부의 맞춤형 보육 정책을 사실상 무시하고 있고, 정부 역시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또 복지부는 맞춤반의 기본 보육료를 종일반 수준과 같게 유지해 주는 대신에 이 돈을 보육교사 처우 개선에 사용하도록 했지만 현장 분위기는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육교사는 “올해는 첫해라 부모들이 종일반으로 등록하려고 했지만, 맞춤반이 자리를 잡고 비중이 높아져 보육료가 줄면 어린이집에서 교사 월급부터 줄일 게 뻔한데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이지은 기자
#종일보육#맞춤형 보육#복지부#어린이집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