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윤 선생(69·명지대 미술사학과 객원교수)을 다시 만난 건 10년 만이었다. 첫 만남은 미술기자로 일하던 2005년 서울옥션 경매에 나온 이중섭 작품 4점을 두고 위작 시비가 일었을 때였다. 현재 대법원 심리 중인 이 사건에 대해 1, 2심 법원이 모두 위작 판정을 내리기까지 선생은 처음부터 위작임을 끈질기게 주장했었다. 당시 ‘진품’임을 주장했던 대형 화랑의 집중 포화에도 아랑곳없이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어제 재회는 이우환 화백 때문이었다. 최 선생은 이번에 경찰 의뢰로 감정에 참여해 경찰이 압수한 13점에 모두 ‘위작’ 감정을 내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과 경찰 수사에 결정적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이번엔 정말 감정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이중섭 시비 때처럼 힘든 싸움을, 그것도 생존 거장의 작품을 겨냥하는 일을 해봐야 몸과 마음만 상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불신도 컸다고 했다. 국과수 감정이 나오고 위조단도 잡혔지만 선생은 여전히 편치 않아 보였다. 그의 말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작품들은 새 캔버스를 헌것처럼, 새 틀을 헌 틀처럼 보이게 해 비전문가라도 의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점과 선 몇 개뿐인 원작은 그리기도 쉽고 재료도 물감 하나로 너무 단순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위조가 가능하다. … 위작을 솎아내면 진품의 가치가 올라가는데 작가 본인이 가짜를 진짜라 우기는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요즘 미술계는 이우환 화백 이야기만 나오면 자조와 탄식이 대세다. 무엇보다 이 화백이 대한민국 경찰과 국과수를 믿을 게 못 되는 집단으로 깔아뭉개는 태도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높다. 60대의 중견 작가는 “그가 대한민국을 무시하고 있다는 모욕감을 느꼈다”며 이렇게 말했다.
“작품에서야 얼마든지 법과 공권력을 조롱할 수 있는 게 예술의 특권이라 하지만 예술가의 삶마저 법과 국가권력을 무시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가 1950년대 후반 일본으로 밀항해 망명자처럼 살며 세계적 거장이 된 것에 무한한 경외감을 갖고 있지만 종종 그와 대화하다 보면 그의 조국은 50년대에 멈춰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시 최 선생 말이다. “위작들의 화풍(畵風)이 서로 다르다. 위조단이 최소 5개, 유통시킨 위작만 최소 100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압수된 위작 일부가 경찰의 자금 추적 결과 점당 5억∼10억 원에 팔린 것으로 미뤄 볼 때 피해 액수는 수백억 원대로 보인다.” 이쯤 되면 대형 사기 범죄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 화백이 대규모 변호인단까지 꾸려 경찰에 맞선다고 하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부장판사 출신인 한 법조인은 “이 화백의 주장이 거짓일 경우 국가 감정기관에 대한 명예훼손은 물론이고 법정에서 위증죄로 처벌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선 불법 거래로 컬렉터들에게 큰 손해를 입힌 화랑들과 공범으로 몰릴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정한 예술 정신은 거짓을 벗겨내고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 생명이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예술가들은 저항정신을 갖는다. 하지만 ‘명성=돈’이 되는 풍조는 종종 예술가들의 정신을 오염시켜 법과 도덕 감정을 무디게 만든다.
경찰은 이우환 위작 사건을 여기서 끝내서는 안 된다. 이 화백 본인은 물론이고 그의 작품을 팔아 온 관련 화랑들로까지 수사 폭을 확대해 엄정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 한 화가에 의해 모욕당한 대한민국 수사기관의 위신을 추스르고 싶다면 이번 사건에서 과학수사의 진수를 보여줘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