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투어를 통해 대마도를 여행 중인 한국 관광객이 안내원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발해투어는 대마도에서 태극기를 들고 관광하는 회사로 유명하다. 발해투어 제공
“독도 앞바다에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는 우리의 모습이 우스웠지요. 독도는 당연히 우리 땅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쓰시마(對馬) 섬이 대한민국의 영토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편이 독도를 지키는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했지요.”
쓰시마 섬 전문이자 부산의 다크투어(역사교훈여행) 대표 여행사인 발해투어㈜ 황백현 대표이사(70)는 7일 “숨이 다할 때까지 이 업을 하겠다”고 했다.
내년이면 창립 20주년을 맞는 발해투어는 연매출이 30여억 원에 이르지만 여행사 특성상 실수입은 3억 원 정도의 중견 여행사다. 직원 20여 명에 서울에 지사를 두고 있다.
발해투어의 탄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 고교 영어교사를 하던 그는 일본의 ‘독도 망언’을 보다 못해 1987년 극일운동시민연합을 결성했다. 일본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반일과 친일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극일을 해야 한다고 여겼다. 극일은 학일(연구), 지일(바로 알기), 진일(진출), 용일(활용하기)이 핵심 사항이다. 그러던 중 1996년 2월 일본 외상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자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났다. 그는 시민 300여 명을 모아 배를 이용해 독도 앞바다에서 ‘독도 지키기 운동’을 벌였다. 이때 그는 교사를 그만두고 대학 전임강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운동을 서너 차례 하다 보니 누군가가 그를 무허가 여행알선업자로 경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자초지종을 들어본 경찰은 그를 입건하지 않고 차라리 여행업 허가를 내 이 운동을 계속해 보라고 권했다. 1997년 6월 1일 부산진구청에 ‘극일운동독도순례추진본부주식회사’란 이름으로 등록을 한 게 여행사의 탄생이었다. 당시 황 대표는 동료 14명과 독도 대신 쓰시마 섬에서 ‘한국 땅’운동을 벌이자고 뜻을 모았다. 회사 이름도 ‘발해투어’로 바꿨다.
하지만 부산에서 쓰시마 섬 가는 뱃길이 없어 후쿠오카(福岡)를 경유해 20시간 만에 쓰시마 섬에 도착하는 등 개척 길은 가시밭길이었다. 황 대표는 본격적인 관광에 앞서 4차에 걸쳐 ‘쓰시마 섬 탐방’을 실시해 우리와 관련된 역사 유적과 유물을 찾아 정리하고 고증했다. 최익현 선생 순국비, 조선 말 비운의 황녀 덕혜옹주결혼봉축비, 300년 전의 한글전문학교(韓語司), 조선침략을 위한 어학소, 세종 때 쓰시마 섬 도주가 이종무 장군에게 항복한 소선월 등 수십 곳의 관광 포인트를 발굴했다.
황 대표의 노력으로 1999년 7월 14일에는 대아고속해운 ‘씨플라워호’의 직항로가 개설됐다. 일주일에 2, 3차례 운항하던 노선은 2007년부터는 매일, 2011년부터는 쾌속선 3척이 하루 3차례 운항하고 있다. 부산항을 통해 쓰시마 섬을 찾은 관광객은 지난해 25만 명, 올해는 30만 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발해투어는 일본 침략의 역사를 되돌아보기 위해 22∼24일 국내 여행사로는 처음으로 20여 명을 모아 ‘군함도’로 알려진 나가사키(長崎) 현 하시마(端島) 섬 탐방에 나선다. 다음 달 15일에는 2차 탐방을 할 예정이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800여 명이 끌려가 탄광에서 일하다 25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이곳은 지난해 7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올해 말에는 조선 침략의 배후인물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조선 식민지화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의 생가가 있는 야마구치(山口) 하기(萩)도 탐방할 계획이다. 051-253-5887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