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100] 세계 최초 디스플레이 전문인력 양성 ‘경희대 정보디스플레이학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2일 10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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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경희대 정보디스플레학과 교수가 디스플레이 융합 시스템을 연구하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승우 경희대 정보디스플레학과 교수가 디스플레이 융합 시스템을 연구하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아이언맨, 어벤저스, 아바타,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 SF영화에는 다양한 디스플레이가 등장한다. 영화 속에 많이 나오는 디스플레이는 투명디스플레이, 홀로그램, 증강현실을 활용한 디스플레이 등이다. 영화 속 디스플레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구현할 수 있고, 정형화된 사각 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크기와 디자인을 갖고 있으며, 사용자가 상상하는 것을 보여줘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2016년 2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컨퍼런스. 미국 벤처기업 메타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인 메런 그리베츠가 증강현실 장비 ‘메타2’를 이용해 허공에 뜬 3차원(3D) 영상을 맨손으로 조작했다. 그리베츠는 홀로그램 영상을 터치하고 이곳저곳으로 이동시킬 뿐만 아니라 3D 영상통화를 하면서 파일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리베츠가 자신의 눈을 통해 보는 장면은 메타2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무대 위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일본 2022년 월드컵유치위원회는 홀로그램 TV로 모든 월드컵 경기를 중계할 계획이라고 밝히는 등 많은 사람들이 꿈꿔온 영화 속의 다양한 디스플레이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 같은 디스플레이는 TV, 컴퓨터, 스마트폰 등이 등장한 뒤 삶이 크게 달라진 것에서 보듯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디스플레이는 각종 전자기기에 쓰이는 화면표시장치를 말한다. 제품에 많이 쓰이는 디스플레이는 TFT-LCD(초박막 액정표시장치)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이다. TFT-LCD는 액정을 이용한 화면표시장치로 가볍고 얇으면서도 높은 해상도를 구현할 수 있으며 전기 소비량이 적다. 이런 장점 덕분에 휴대성이 강조되는 휴대전화에서부터 높은 해상도와 밝기가 요구되는 대형 TV까지 다양한 곳에 쓰인다. OLED는 스스로 빛을 내는 유기물질을 이용한 화면표시장치다. 명암비와 색 일치율이 높고, 색 재현 범위가 넓으며, 응답속도가 빠른 것이 특징이다. 이런 장점은 멀티미디어 콘텐츠, 인터넷 사용 등 디스플레이의 성능이 중시되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차별화 요소로 작용해 10인치 이하 중소형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수요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미래 디스플레이는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언제 어디서나 제공함으로써 지금보다 더 큰 만족감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투명 터치 디스플레이와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에서 더 나아가 폴더블 롤러블 디스플레이, 삼성전자의 ‘기어VR’ 같은 가상현실 증강현실 디바이스, 홀로그램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증강현실과 홀로그래픽 기술을 활용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는 디스플레이산업에 큰 변화를 불러오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경희대 정보디스플레학과 학생들이 알파스텝 장비를 이용해 반도체에 증착된 박막의 두께를 측정하고 있다.
경희대 정보디스플레학과 학생들이 알파스텝 장비를 이용해 반도체에 증착된 박막의 두께를 측정하고 있다.


“디스플레이는 이미 우리의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영향력은 오래 전부터 점점 커져 왔고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승우 경희대 정보디스플레이학과 학과장은 “디스플레이 발전은 인간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진다”며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고 있는 곳이 바로 정보디스플레이학과”라고 말했다. 이 학과장은 KAIST 박사 출신으로 삼성전자에서 화질이 좋고 응답 속도가 빠른 영상과 저전력으로 구동되는 LCD를 개발하다가 2006년 교수로 부임했다.

정보디스플레이란 ‘정보+디스플레이’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정보를 보여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 생활 속에서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TV, 컴퓨터 모니터, 스마트폰 스크린 등이 있다. 우리에게 정보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디스플레이의 기초 원리부터 배운 뒤 실제로 제작 실습까지 할 수 있는 곳이 정보디스플레이학과다.

경희대 정보디스플레이학과 재학생들은 학과 이름을 줄여 ‘정디’라고 부른다. 학과 행사 때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비전을 담아 ‘미래 정디’ 구호를 외친다. 이 교수는 “깊게 생각하고 새로운 것에 꾸준하게 도전하는 열정 넘치는 학생이 미래 정디가 원하는 학생”이라고 말했다.

경희대는 1997년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처음으로 디스플레이학과를 대학원에 개설했다. 국내 디스플레이산업이 빠르게 성장하자 관련 업계에서 학부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런 뜻을 받아들여 2004년 디스플레이산업 발전에 필요한 역량을 지닌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학부 과정인 정보디스플레이학과를 세계 최초로 서울캠퍼스에 설립했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 디스플레이산업이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은 선구자들의 노력과 함께 우수한 인력의 공급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보디스플레이는 어느 한 분야만 잘한다고 해서 이룰 수 없는 학문이다. 재료, 공정, 소자, 회로, 시스템 등 여러 부문이 협업과 융합을 해야 원하는 가치를 얻을 수 있는 분야이다. 요즘 화두인 융합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물리, 화학을 기초로 반도체, 광학, 회로, 시스템 관련 과목들을 두루 배운다. 다른 학과에서 배울 수 없는 LCD, OLED, 웨어러블 디스플레이 같은 과목도 개설돼 있다.

경희대 정보디스플레학과 학생들이 디스플레이 구동을 위한 회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실험을 하고 있다.
경희대 정보디스플레학과 학생들이 디스플레이 구동을 위한 회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실험을 하고 있다.


경희대는 정보디스플레이학과를 대학의 미래를 이끌어갈 특성화 분야로 선정해 특별 지원하고 있다. 학생들이 실험을 통해 이론을 이해하고 실무 능력을 기르도록 세계 대학 중 유일하게 100억 원이 넘는 TFT-LCD, AMOLED 제작 라인과 클린룸을 갖추고 있다. 전자기기에 실제로 쓰이는 디스플레이를 분석하고 반도체 제작 공정을 체험하는 등 교과는 실험 중심으로 운영된다.

학생이 산업 현장을 이해하고 글로벌 마인드를 갖도록 매 학년 국내외 인턴십 또는 연수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1학년은 중소·중견기업, 2학년은 대만 대학, 3학년은 프랑스 대학, 4학년은 대기업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올 여름방학 때는 세미콘라이트, 디엠에스 등 14개 업체에서 학생 65명이 인턴을 하고 있다. 프랑스 연수에는 24명이 참가했다. 또 LG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코오롱인더스트리, 동진쎄미켐, 파크시스템스 등 관련 업계의 최고경영자(CEO)와 연구소장을 초청해 특강을 듣고 있다.

한수진 씨(4학년)는 “국내 중소기업에서 인턴을 한 뒤 대만과 프랑스 대학에서 영어로 강의를 듣고 현지 업체도 방문해 세계 시장과 산업 동향을 이해하게 됐다”며 “이 같은 경험과 폭 넓게 배운 과목을 기반으로 디스플레이 전문 변리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교수진은 12명으로 구성돼 있다. 교수 대부분은 기업 출신이다. 장진 교수는 30인치가 넘는 대형 OLED 제조 기술을 삼성SDI와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하고 디스플레이 관련 논문을 500편 이상 발표한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2006년 인촌상(자연과학 부문)을 수상했다. 한민구 석좌교수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분야 전문가로 서울대 공대 학장, 지식경제부 신성장동력기획단 신산업분과위원장 등을 지냈다. 오세중 변리사는 겸임교수를 맡아 지적소유권법 강의와 함께 변리사를 준비하는 학생을 지도하고 있다. 인텔 임원인 아친 부호믹과 픽셀사이언티픽 최고경영자인 리처드 메카트니는 초빙교수로서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랙티브 디스플레이와 LCD 구동원리 등을 인터넷으로 강의하고 있다.

정보디스플레이학과의 입학 정원은 58명이다. 2016학년도에는 수시로 32명, 정시로 26명을 뽑았다. 입학 경쟁률은 수시 25.6 대 1, 정시 5.7 대 1이었다. 졸업생은 국내외 디스플레이업체, 정부출연연구소 등에 주로 취업한다. 취업률은 2014년 94%, 2015년 87%로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변리사를 준비하는 사람을 빼면 거의 다 취업한다고 볼 수 있다. LG디스플레이와는 산학협력 프로그램 ‘LGenius’를 운영하고 있다. 3학년 2학기 때 LG디스플레이 주관 캠프에 참가해 팀 프로젝트와 면접을 통과하면 4학년 때 1000만 원의 장학금을 받고 졸업 후 LG디스플레이에 취업하게 된다. 프랑스 그랑제콜인 에콜폴리텍과는 공동 석사 학위 과정을 두고 있다. 경희대에서 1년, 에콜폴리텍에서 1년 6개월 과정을 마치면 두 곳에서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

김상철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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