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90년대 놀이방’ 展
‘스트리트파이터’ 줄서서 게임하고 ‘노이즈’ 포스터-워크맨 등도 구경
시민 기증 7만점중 주제 정해 공개
서울역사박물관 기증유물전시실에 전시 중인 ‘1990년대 서울 놀이방’이 1980, 9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X세대’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면서 30, 40대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제발 게임 좀 그만해라.” 요즘 부모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모바일이나 PC게임에 매달리는 자녀들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이와 정반대 상황이 연출된다. 부모들이 자녀를 옆에 세워둔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에 빠진다.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역사박물관 기증유물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서울 90년대 놀이방’ 기획전은 1980, 9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일명 ‘X세대’의 추억을 재현한 곳이다. 우선 동네 오락실에서 즐겼던 아케이드 게임이 눈길을 끈다. 귀여운 아기공룡이 입에서 풍선을 발사해 적을 물리치는 ‘보글보글’, 전투기 슈팅게임의 원조인 ‘갤러그’, 격투기 게임의 전설인 ‘스트리트파이터’ 등이다. 30, 40대 부모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며 추억의 게임을 즐긴다. “조이스틱을 왼쪽 오른쪽으로 빠르게 튕겨야 해”라며 현란한 손기술을 보여주는 아빠의 모습에 아이들도 즐거워한다.
비디오방과 만화방 관련 자료도 구경할 수 있다. ‘아이큐 점프’와 ‘소년 챔프’ 등 1990년대 인기 있던 만화잡지를 박물관에서 보게 된 관람객들은 “새삼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걸 느꼈다. 오랜만에 학생 때 기억을 떠올렸다”고 입을 모았다. 또 4인조 남자그룹 ‘노이즈’의 포스터, 남성듀오 ‘듀스’의 CD 앨범 등 당시 소녀팬의 감성을 자극했던 인기가수들의 자료도 있다. 청소년들의 필수품이었던 소니 워크맨도 전시 중이다.
이곳에 전시된 물건들은 시민들이 기증한 것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유물관리과 김동준 학예연구사(34)는 “2009년부터 시민들의 근현대 유물 기증이 활발해지기 시작해 현재 7만 점을 보유 중”이라고 밝혔다. 기증품은 가전제품이 가장 많고, 그릇 공예품 서적 식기류 등의 순서다. 공연 팸플릿과 영화포스터 수집광인 사람들이 오랫동안 소중하게 모은 수백 점을 기증하기도 했다. 건축가들은 연구 실적이나 희귀한 건축 자료를 기증한다. 디자이너 고 앙드레 김의 경우 유족들이 드레스 작품을 기증했다.
기증 신청이 접수되면 유물관리과에서 내부 검토를 거쳐 직접 수령한다. 물론 “집에서 쓰던 프라이팬을 기증하겠다”는 황당한 일도 간혹 있다. 김 학예사는 “다른 사람들과 나눠 보고 싶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망가질 것 같아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보유 가치가 있는 물품은 보존처리를 거친 뒤 지하 수장고에 보관된다. 지금까지 기증받은 근현대 유물 7만 점은 아직 대부분 공개되지 않았다. ‘서울 90년대 놀이방’처럼 앞으로 다양한 주제를 정해 시민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학예사들은 최근 ‘청량리 588구역 재개발’ 현장 모습을 수집하고 있다. 당구장에서 당구물품을 기증받은 데 이어 요즘 볼 수 없는 나무 전신주와 홍등가 간판들도 확보했다. 김 학예사는 “1980년대에 시곗바늘이 멈춰 있는 작은 여관방을 그대로 옮겨오는 방식으로 현대 역사를 전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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