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으로 되살아난 伊 국민차 피아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0일 03시 00분


[車산업 위기, 노사관계부터 풀자]임금인상 제한하되 비정규직 보호 강화
스페인 노사도 임금-고용 빅딜… 전문가 “위기극복 사례 배워야”

이탈리아 피아트는 1990년대 중반 자국 자동차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한 명실상부한 ‘국민’ 자동차 회사였다. 하지만 수입차 비중이 점점 늘면서 피아트의 독점적 지위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경영 위기에 빠진 피아트는 인력 감축을 포함한 구조개혁 방안을 제시했지만 번번이 노조의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피아트는 이탈리아 대신 폴란드, 브라질 등으로 공장을 옮겼다. 피아트의 이탈리아 내 생산 비중은 1990년 90%에서 2010년 28%로 뚝 떨어졌다.

그러나 피아트의 상황이 반전됐다. 원동력은 노동시장 개혁이다. 일자리를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노조가 한발 양보한 것이다. 피아트 노사는 2011년 노동 유연성을 강화하는 단체협약을 맺었다. 임금 인상 제한, 파업 금지, 전환배치 허용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노사가 협조의 길로 들어서자 경쟁력도 회복됐다. 피아트는 2012년부터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섰다. 2012년 38만6000대였던 이탈리아 내 생산은 지난해 44만8000대로 늘어났다.

스페인 자동차산업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자국 자동차 브랜드가 없는 스페인에는 낮은 인건비에 매력을 느낀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잇달아 진출했다. 프랑스 르노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 더 값싼 노동력을 가진 루마니아나 터키가 새로운 생산 거점으로 떠오르면서 스페인은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르노의 스페인 법인 노사는 2009년 임금 동결, 전환배치 가능 등의 내용을 담은 단체협약을 맺었다. 임금 인상을 제한하되 고용은 보장받는다는 ‘고용과 임금의 빅딜’이 핵심이었다. 노조는 스스로 임금을 동결하고 탄력근무제와 전환근무를 수용했다. 노사가 손을 맞잡은 뒤 르노의 스페인 공장에는 물량이 다시 들어왔다. 2013년부터 바야돌리드 공장에서 생산 중인 소형스포츠유틸리티차량(CUV)인 ‘QM3’가 대표적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19일 개최한 ‘스페인·이탈리아 자동차산업의 노동부문 개혁 사례 연구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새로운 노사 관계를 정립해야 자동차산업이 위기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경직된 노동 법제를 개선해 유연성을 확보하는 한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정성은 높이는 방향으로 갔다”며 “한국도 이를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통적으로 안정성과 유연성, 고용과 임금은 상쇄 관계였지만 이젠 조화와 균형, 지속 가능성이 화두인 것을 알 수 있다”며 “노사 파트너십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노동개혁#이탈리아#피아트#자동차#임금#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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