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팀이랑 붙어도 매번 지는 건 아닌 탓에 스포츠 경기엔 감동이 있다. 상대와 같은 운동장에서 경쟁하니 내가 더 땀 흘려 준비한다면 이길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통한다. 한데 알고 보니 한쪽 팀에 유리하도록 경기장이 슬며시 기울어져 있다면 경기에 나설 이유나 경기를 보고 감동받을 까닭도, 그 종목을 계속 유지해야 할 근거도 사라진다.
지금 한국의 고등학교가 딱 그 꼴이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대학입시 중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있다. 취지는 좋다. 내신성적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 동아리 활동, 진로, 독서, 봉사 활동 내용으로 평가한다. 한마디로 ‘성적보다 싹을 보고 뽑겠다’는 뜻이다. 내년 대학 신입생 중 20.3%가 이 전형으로 뽑히고 2018학년도엔 23.6%로 더 늘어난다. 서울시내 주요 15개 대학으로 좁혀 보면 그 비율은 40%를 넘는다. 서울대는 내년과 2018학년도 수시 전형 모집인원 전부를 이 전형으로 선발하는 등 상위권 대학일수록 이 전형으로 많이 뽑는다.
학생이 공부만 하지 말고 진로를 설계하면서 창의력과 리더십을 발휘해 기존에 없는 동아리 활동도 학기 초부터 진행하고, 진로와 어느 정도 맞는 봉사도 하라는 취지다. 관심 있는 분야뿐 아니라 진로와는 정반대 분야의 책도 꾸준히 읽고 뭘 배우고 느꼈는지 기록해야 한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 이게 가능하겠느냐고 (누군지 모를) 이 입시제도 설계자에게 묻고 싶다. 나 역시 당장 눈앞의 현실에만 안주하지 말고 먼 미래를 봐서, 지금 어려워도 한발 나아가야 한다는 거창한 취지에는 동의한다.
허나 이 전형의 핵심 요소인 자율동아리 활동을 분석해 보니 일반고 학생 참여율은 52.5%로 나타났다. 자율동아리란 모의 유엔총회 준비위원회를 꾸리든 한국에서 활성화되지 않은 스포츠 종목 동아리를 만들든, 동네 문화특성을 탐구해 보고서 쓰는 동아리든 학교에 없던 창의적인 새로운 동아리를 말한다.
일반고에선 절반 수준이었지만 과학영재학교 참여율은 287.4%로 나타났다. 학생 1명이 거의 3개의 자율동아리 활동에 나선 셈이다. 서울지역 외국어고 비율은 평균 120%란다. 주요 자율형사립고의 비율은 172.3%, 그중 민족사관고는 333%에 달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모였으니 성적이 더 나은 건 당연하겠지만 자율동아리 활동은 학업 성적과 상관없는데 왜 이런 결과가 생겼는지 의문이다. 교과 성적 이외 요소를 반영해 학생을 뽑겠다며 만든 게 학종인데, 일반고와 그 외 학교를 비교하면 이미 경기장은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 셈이다.
학생이 주도해야 한다지만 교사가 학생 능력과 진로 방향에 맞게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주고 운영 방식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학교 안에서 학생 힘으로 여럿이 참여하는 동아리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일반고 학부모 중 자녀 생활기록부의 그 많은 칸을 빛나게 채워주기 위해 아이 손을 잡고 달려가는 곳은 학교 교무실과 입시 컨설팅 학원 중 어디일까. 대학수학능력시험은 EBS와 학원이 준비해 주니 수업시간은 대충 때우고, 학생부에 써야 할 수만 가지 스펙은 애타는 학부모와 컨설팅 학원 몫이니 교사는 할 일이 없다는 비아냥거림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일반고 학생이 성적 이외의 요소의 학종에서 외고 과학고 학생과 똑같은 운동장에서 경기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지난달 보도된 중앙일보 설문조사 결과 학종이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했다고 보는 학부모는 18.9%, 학생은 21.5%에 불과했다는 게 답을 찾는 데 참고가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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