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에서 출판을 하다 보니 두어 달에 한 번은 서울과 통영을 오가며 일을 하고 있다. 지난주에 새 책 마케팅을 위해 다시 서울 출장길에 올랐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을 피해 도착한 서울은 폭염주의보로 도시 전체가 뜨거운 용광로와 같았다. 30년 넘게 살았던 도시의 여름을 마주하기가 이렇게 힘겹다는 사실에 당황하면서 파주에서의 첫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늦은 밤 지하철을 탔다. 서울 지하철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들을 보면서 처음 통영에 내려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맑은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어린아이들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아줌마, 서울에서 지하철 타봤어요? 기차같이 생긴 거, 기다란 자동차요.”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 부부에게 그 아이들이 가장 궁금했던 것은 바로 지하철이었다. 오랫동안 출퇴근길에 시달리던, 그래서 내겐 때론 ‘지옥철’과 같았던 지하철을 타봤냐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묻던 어린이들의 질문이었다. 처음 그 질문을 받고 몹시 당황했지만 나중에 아이들의 환경을 알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통영엔 기차도 없고, 전철도 없어서 기차 같은 교통수단은 이곳 아이들에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기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 질문은 서울의 아이들이 “와, 집에서 바다가 보여요? 큰 배도 타봤어요?”라고 묻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는 걸 곧 깨닫게 되었다.
살아온 환경의 차이가, 그 소소한 일상들이 우리의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버린다. 서울에서 내려온 지인들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역시 우리가 처음에 가졌던 질문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묻는다. “통영에서 어떻게 먹고살아요? 이렇게 사는 거, 지루하지 않아요? 책 팔아서 생계가 해결되나요?”라고.
우리의 삶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서울에서도 힘들다는 출판을 하면서 가까스로 버티고 있고, 책방까지 열어서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통영에 살면서 우리의 질문도 달라졌다. “책은 잘 안 팔리고, 빚도 있지만 삼시세끼 굶지 않아요. 이 무더운 여름에 열대야도 없고, 살랑살랑 바닷바람 시원하고. 저녁노을은 가슴이 터질 듯이 아름답고, 재래시장의 먹을거리는 사시사철 풍부하고요. 우리, 더 바라면 욕심 아닐까요?” 환경이 바뀌면 삶도 바뀐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도 이렇게 적응해 가고 있다.
※필자(43)는 서울에서 광고회사, 잡지사를 거쳐 콘텐츠 기획사를 운영하다 경남 통영으로 이주해 출판사 ‘남해의봄날’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