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모교. 인구 800만 명을 겨우 넘는 작은 나라에 있지만 노벨상 수상자(동문과 교수)를 21명이나 배출한 대학. 유럽을 대표하는 연구중심대학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다.
노벨상 수상자 수에서 알 수 있듯 이 대학의 연구 역량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학 차원에서 기초과학 분야 연구를 적극 육성하는 전통으로도 유명하다.
ETH는 학생 교육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 13, 14일 서울에서 열린 한-스위스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을 찾은 ETH의 데틀레프 귄터 연구부문 부총장(화학 전공)은 “유명 배우와 코미디언이 무대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것처럼 ETH 교수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매료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매력적인 강의를 하지 못하고,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지 않는 사람은 ETH 교수가 되기 힘들고, 된다 해도 오래 버티기 힘들다”고 단언했다.
‘노벨상급 연구’를 지향하지만 교육과 학생에 관심이 없는 ‘연구원 같은 교수’는 발을 못 붙인다는 것이다. ETH는 교수를 뽑을 때 연구력 못지않게 강의를 얼마나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하는지, 학생들과의 관계가 원만한지 등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알아본다. 임용 뒤 교수평가도 전공, 연차, 경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연구와 교육을 균형 있게 반영하는 게 원칙이다.
한국 학생을 지도한 경험이 있는 귄터 부총장은 최근 한국 주요 대학들이 국제적인 평가에서 약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BT) 분야를 중심으로 한국 대학들과 다양한 교류를 펼쳐 나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대부분 한국 대학이 연구력을 중심으로 교수를 평가한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평가 기준이 획일적이고, 연구에 비해 교육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생각하는 것 같다는 눈치였다. 교육부와 국내외 주요 평가 기관들이 교수들의 연구 성과를 위주로 대학을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하자 “왜 모든 대학이 그런 획일적인 평가 기준에 얽매여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귄터 부총장은 ETH가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한 노하우를 이렇게 설명했다.
“ETH에는 학부 때 교육 역량이 뛰어난 교수에게서 영감을 받은 학생이 해당 교수를 따라 대학원에 진학해 오랜 기간 같이 연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수 학생들이 학·석·박사를 모두 ETH에서 하고 싶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교육 덕분에 ETH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저도 그런 교수가 되고 싶습니다.”
국제적인 연구중심대학,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대학이 되겠다며 ‘랭킹 높이기’에 몰두하는 한국 대학들이 지금까지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또 한 번의 도약을 하기 위해 새겨들어야 할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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