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녀에게 협박당해 돈 빌렸다 ▲검찰의 불법·과잉수사에 당했다 ▲건설업자 이모 씨, 현직검사 보호하려 허위진술 ▲진경준 사건과 내 사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의정부교도소에는 재소자들에게 무료 법률 상담을 해주는 전직 검사가 있다. 머리가 하얗게 센 그는 영화 <검사외전>의 변재욱 검사(황정민 분)처럼 수감자 신분으로 재소자들의 사건기록을 검토하고 조언을 해준다. 재소자들은 저마다 억울한 사연을 품고 그를 찾는다. 그의 도움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재소자가 꽤 있다.
김광준(55) 전 검사. 검찰 재직 시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2012년 11월 검찰총장의 특명을 받은 특임검사의 수사를 받고 구속됐다. 유진그룹 측과 5조 원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측근 강태용 씨, 건설업자 이모 씨 등으로부터 모두 10억 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였다. 법원에서 인정한 뇌물액수는 그 절반이지만, ‘뇌물검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2014년 1월 서울고등법원은 그에게 징역 7년에 벌금 1억 원, 추징금 4억5000여만 원을 선고했다. 그해 5월 대법원이 그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형이 확정됐다.
교도소에서 3년8개월째 복역 중인 그의 이름이 언론에 다시 오르내린 데는 현직 검사장으로는 사상 처음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의 공이 크다. 게임업체 넥슨 측으로부터 4억 원대 공짜주식과 자동차를 받은 그가 뇌물 혐의 등으로 구속되자 ‘제2의 김광준 사건’이라는 말이 나왔다. 검찰 안팎에선 그에 대한 사법처리 방향을 두고 ‘김광준 식 해법’이 거론됐다.
김 전 검사와의 인터뷰는 진경준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추진됐다. 그와 연락하는 지인을 통해 재심을 청구한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실제로 그는 방대한 분량의 재심청구서를 작성했고, 조만간 서울고등법원에 접수시킬 예정이다.
그가 갇힌 몸이라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기자는 재심청구서와 1·2심 판결문, 서신 등 참고자료를 정밀 분석한 후 그에게 45개 항목으로 구성된 질문지를 보냈다. 7월 21일, 그가 보낸 우편물이 기자의 집에 도착했다. A4 용지 23쪽에 이르는 장문의 친필 답변서였다. 비록 얼굴과 얼굴을 맞대진 않았지만, 그의 표정과 기분과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재심 주장이 받아들여지려면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돼야 한다. 김 전 검사는 자신이 받은 돈은 대가성 없는 차용금이기 때문에 뇌물이 아니라고 강변하며 몇 가지 ‘새로운 증거’를 제시했다. 또한 검찰의 불법·과잉 수사로 지은 죄에 비해 과도한 형을 선고받았다고 하소연했다.
재심 청구의 법적 타당성을 떠나 특수통 검사였던 사람이 검찰에 당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우리는 그의 답변을 통해 죄인을 수사하던 처지에서 죄인으로 전락한 한 사내의 드라마틱한 인생사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불륜 관계에 대한 고백과 말기암 환자였던 부인이 수사 과정에 사망한 사연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편의상 질문과 답변을 요약 정리했음을 밝혀둔다. 인터뷰 기사 뒤에 그를 수사했던 김수창 전 특임검사 등 사건 관련자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첨부했다.
-수감생활을 한 지 3년 반이 지났다. 건강은 어떤가. 식사는 잘하는지.
“거의 20년째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치료를 받아왔다. 지금은 협심증, 고지혈증, 고혈압 등으로 병동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다. 최근 강태용이 출현한 후 재심 기대에 우울증이 많이 호전된 상태다. 밥도 잘 먹는다. 다만 정신과 약을 15년 가까이 먹다보니 기억 장애가 심한 편이다.”
강태용 씨는 그의 고등학교 동창이다.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2011년 사망 추정)의 측근이던 그는 2008년 11월 경찰 수사를 피해 중국으로 도피했다가 지난해 연말 국내로 송환된 후 구속됐다. 그의 혐의는 2008년 5~9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3부장이던 김 전 검사에게 세 차례에 걸쳐 2억7000만 원을 건넨 것. 그가 도피 중일 때 진행된 재판에서 김 전 검사는 이를 빌린 돈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뇌물로 판단했다.
-교도소에서의 일상을 소개해달라.
“매일(일요일 제외) 40분씩 주어지는 운동시간에 열심히 운동한다. 주간지 3개, 월간지 2개, 신문 8개를 구독하고 책도 많이 읽는다. 사회 복귀에 대비해 회계학 공부도 한다.”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의 억울한 사연을 많이 접하면서 검사의 증거조작과 판사의 꿰맞추기 판결이 종종 발생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들었다. 주요 사례를 소개해줄 수 있나.
“상담한 수용자들의 기록을 검토해 ‘일부 무죄’나 ‘전부 무죄’ 선고를 받게 해줬다. 그 과정에 판사의 꿰맞추기 판결을 여러 번 봤다. 하지만 특별히 지적할 만한 사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황OO 판사(김광준 사건 항소심 재판장)의 판결에 문제가 많다는 건 말할 수 있겠다. 그에게 재판 받은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잘 알 수 있을 거다. 기억력이 감퇴해 구체적으로 지적하지는 못하겠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가. 아니면 억울한 마음이 큰가.
“내 잘못을 많이 반성한다. 옛 애인이 찾아왔을 때 뿌리치지 못한 것과 포항에서 부장검사로 있을 때 초등학교 선배인 이OO 형으로부터 1년에 몇 차례 회식비 받았던 게 후회스럽다. 사건 관련성이 없는 돈이었지만, 공직자로서 잘못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을 넘어 불법 다단계 사기범한테 뇌물을 받았다며 ‘10억대 뇌물검사’로 낙인찍혀 7년형을 선고 받은 점, 공무원 뇌물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사회적으로 매장된 점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억울하다.”
‘옛 애인’은 그가 대학생 때 결혼을 전제로 사귀었다가 집안의 반대로 헤어진 김모 씨를 말한다. 각기 다른 사람과 결혼한 두 사람은 2004년 재회해 내연 관계로 발전했다. 김 전 검사는 김씨에게 2007년 2억5000만 원을 건넸다. 김씨의 요구에 따라 써 준 ‘결혼 서약서’을 파기한 데 따른 위자료 명목의 돈이었다고 한다. 김 전 검사는 평소 친분이 깊던 유진그룹 유경선 회장에게서 3억 원을 빌려 이 돈을 마련했다.
김 전 검사에 따르면 2008년 5월 김씨로부터 또 다시 금품 요구를 받았다. 김 전 검사가 ‘관계 정리’를 요구하자 김씨가 “2억 원을 주지 않으면 불륜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는 것. 이를 해결하려 강태용 씨에게 돈을 빌렸다는 게 김 전 검사의 주장이다.
-조희팔 측근 강태용 씨의 검찰 진술서가 재심 청구의 계기가 됐다고 들었다. 강씨 진술은 어떤 의미를 갖나.
“강태용에게 돈 받은 부분에 대해 1심에선 뇌물죄가 인정됐으나 2심에선 알선수재죄로 바뀌었다. ‘불법 유사수신 범행(다단계) 수사 관련 공무원에게 청탁해 달라는 묵시적 청탁 대가’라는 것이다. 묵시적 청탁이라면 강태용이 그런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금품수수 당시 내가 알고 있어야 한다. 내가 2억 원을 빌린 시점이 2008년 5월이고, 강태용이 그런 범행의 배후인물이라는 사실이 수사기관에 포착된 것이 2008년 11월 7일이다. 강태용 진술의 요지는 ‘김광준이 여자한테 협박당한다는 얘기를 듣고 도와주기 위해 2억 원을 보냈고, 사건 관련해 어떠한 부탁도 한 사실이 없으며, 2008년 6~7월에 5000만 원을, 2009년 12월에 1억5000만 원을 돌려받았다’는 것이다. 그의 진술은 기존 판결을 정당화하는 모든 논리를 무너뜨린다. 특히 곧바로 5000만 원을 갚은 사실이 인정되면, 판사도 더는 뇌물이라 우기지 못할 것이다.”
김 전 검사가 강씨에게 받은 2억7000만 원 중 2억 원을 갚은 것은 사실이다. 계좌에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도 인정했다.
-2008년 4월 내연녀 김모 씨로부터 협박을 받고 사의를 표했으나 직속상관인 김수남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명동성 서울중앙지검장의 만류로 계속 근무하게 됐다고 들었다.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현재 김수남은 검찰총장이고, 명동성은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다).
“당시 가까운 변호사들과 상의한 후 김수남 3차장에게 여자에게 협박당한다는 사실을 얘기하고 사의를 표했다. 김 차장은 ‘임명된 지 석 달도 안 됐는데 이런 문제로 그만두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 이 고비만 넘기면 승승장구할 테니 돈을 구해 잘 마무리하라’며 간곡히 만류했다. 얼마 후 명동성 검사장이 불러 갔더니 ‘사표 내지 않은 건 잘한 일이다’라고 격려해 사의를 철회했다.”
-이와 관련해 김수남 총장이나 명동성 변호사에게 진술서를 요청하거나 재판 때 증인으로 신청하지는 않았나.
“그녀(내연녀 김모 씨)도 검찰이나 법정에서 내게 2억 원을 요구한 사실을 인정하고, 그 사정을 잘 아는 최OO 형(사업가)이 같은 취지로 진술했기에 내가 협박 때문에 돈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법원도 인정하리라 생각해 요청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내연녀 김씨에게 2억 원을 건네지 않았다. 빌린 돈이라면 곧바로 전액을 강씨에게 갚았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주식투자를 했다. 법원도 이를 문제 삼았는데.
“최OO 형이 중재해서 돈을 안 줘도 되는 상황이 됐다. 1년 기한으로 빌린 돈이라 일시 주식매수에 사용했다가 주가가 떨어지는 바람에 나중에 변제했다.”
-법원은 김 전 검사가 2009년 12월 강씨에게 1억5000만 원을 갚은 데 대해 “(강태용이) 중국 도피 직후 범행을 은폐하려 돈을 갚은 것으로 정상적 채무라고 볼 수 없다”며 알선수재죄를 인정했다.
“나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것이 2012년 11월이다. 3년 전에 돈을 갚았는데, 그렇게 보는 건 잘못된 판단이다.”
법원은 김 전 검사가 유순태 유진그룹 부사장한테 2008년 9월 5000만 원, 2010년 1월 5억4000만 원을 받은 것에 대해 차용금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이자는 뇌물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김 전 검사가 2008년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으로 재직할 때 유진그룹 계열사인 유진투자증권에 대한 수사를 하다 중단한 사실이 있으므로 수사 무가 대가라는 논리였다. 김 전 검사는 이에 대해서도 재심을 청구했다.
-유진그룹 관련해선 어떤 이유로 재심을 청구했나.
“당시 유진 관련 수사내용은 부장인 나는 잘 모르고 직접 수사를 했던 변OO 검사가 잘 안다. 최근 아들이 내 휴대전화에서 나와 변 검사의 통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을 우연히 발견했다. 당시 수사 대상은 유진투자증권이 아닌 대한석탄공사였다. 석탄공사 임직원들의 배임 혐의를 수사하다 유진투자증권이 어음 매수에 관련된 사실이 드러나 관련자에 대해 참고인 조사를 했을 뿐이다. 변 검사와 통화한 내용에 이런 사실이 잘 드러나 있다. 이는 유진 측에 대한 수사를 한 적이 없다는 명백한 증거다.”
-유진그룹 유경선 회장·유순태 부사장 형제로부터 받은 돈이 2007년 3억 원, 2008년 5000만 원, 2010년 5억4000만 원 등 총 8억9000만 원이다(이 중 뇌물로 인정된 금액은 5000만 원). 사적 친분에 따른 차용금이라 해도 금액이 너무 크지 않나.
“유경선 회장과는 20여 년간 의형제처럼 지냈다. 가족끼리도 서로 아끼는 사이였다. 내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도와준 것이다. 그렇지만 공무원으로서 과도한 금액의 차용이라 생각하고 반성한다.”
김 전 검사는 1심 판결이 끝난 후 김수창 특임검사와 수사검사를 허위공문서 작성 및 증거 위조 혐의로 고소했다. 뇌물수수죄는 직무 관련 대가성이 입증돼야 한다. 김 전 검사에 따르면 당시 수사팀이 이와 관련해 그가 부장검사로 재직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의 직무범위를 명시한 검찰 예규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분장사무 규정에 따르면 특수3부의 직무범위는 다음과 같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소속 공직자 비리, 법조·언론 주변 부조리 관련 사범 등의 인지수사 및 처리에 관한 사항.’ 그런데 공소장과 이를 인용한 1심 판결문에는 원문에 없는 ‘전국적인 기업금융 비리’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김 전 검사가 강태용씨로부터 2억7000만 원을 받은 2008년, 강씨가 속한 불법 다단계 조직은 대구 지역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의 직무범위를 ‘전국적’으로 확대하면 강씨 사건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김 전 검사의 문제 제기로 항소심에서 검찰은 공소장의 관련 내용을 변경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것이 판결에 영향을 미칠 사안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김 전 검사가 고소한 수사팀 검사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직무 관련성을 떠나 차후 수사대상이 될 수 있는 기업의 고위임원에게서 거액을 빌리면서 차용증도 쓰지 않고 이자도 물지 않고 2012년 11월 구속될 때까지 갚지 않았다는 것은 공직자로서 문제 있는 행동으로 비친다. 더욱이 회사 공금 아니었나.
“공금이 아니라 회사 공금을 차용한 돈이었다. 어쨌든 부적절한 행동이었다고 반성한다.”
법원은 김 전 검사가 초등학교 선배인 포항 지역 건설업자 이모 씨에게 받은 5100만 원도 뇌물로 인정했다. 검찰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2년까지 12회에 걸쳐 받은 돈의 총액이다. 이씨가 산업재해 사건과 관련해 청탁 명목으로 돈을 건넸다는 것이다. 김 전 검사는 2004년 6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 부장검사로 재직했다.
김 전 검사는 이에 대해서도 재심을 청구했다. 근거는 이씨의 진술서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29일 작성한 진술서에서 검찰의 강압수사로 허위진술을 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진술서 주요 내용.
“저하고 김광준, 그리고 김OO 검사는 김광준이 포항에 근무할 당시 수시로 만나서 저녁 같이 먹고 술도 같이 마시고, 여러 번 김광준의 관사에서 같이 포커게임을 하다 보니 친밀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김광준이 (2005년 4월) 포항을 떠난 후에도 저는 포항에서 김OO 검사하고 만나 여러 번 자리를 같이 하는 과정에서 좀 더 친밀한 관계가 되고 2005년 말 제가 산재사고가 나서 노동부 사무소에서 조사를 받고 난 후 김OO 검사에게 상의한 사실이 있습니다.” “따라서 사고 당시 김광준에게 부탁할 이유도 없고 부탁한 적도 없는데 검사들이 매일 10여 시간 동안 추궁하는 과정에서 심신이 너무 힘들어 ‘김광준에게 부탁했고 그 대가로 돈을 줬다’고 거짓진술을 했습니다.”
-결국 이씨가 현직 검사를 보호하려 허위진술을 했다는 얘기인가.
“검찰의 강요에 못 이겨, 그리고 김OO 검사를 보호하려 잘못된 진술을 했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법원은 내가 산재 사고 관련해 청탁 명목으로 뇌물을 받았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김 검사에게 부탁한 것이 사실이라면 내게 알선수뢰죄를 적용할 수 없게 된다.”
-이씨는 흔히 말하는 스폰서였나.
“그렇다고 볼 수 있겠다. 부장검사인 내가 개인 돈으로 수사비와 회식비를 대는 걸 보고는 ‘회식비에 보태라’며 가끔씩 돈을 건넸다. 아내 치료비로 쓰라고 준 적도 있는데, 사건 관련해선 한 번도 부탁한 적 없다.”
법원은 김 전 검사가 2008년 12월 KTF 홍보실장 유모 씨와 해외(마카오) 골프여행을 하면서 유씨로부터 경비 667만9493원을 제공받은 사실도 뇌물수수로 인정했다. 그해 9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서 KTF 비리를 수사했던 터라 직무 관련성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김 전 검사는 재심을 청구했다. 근거는 그와 20년 이상 형-동생으로 지낸 사업가 최모 씨가 지난 5월 작성한 진술서. 그에 따르면 유씨가 현지에서 술값과 식비로 300여만 원을 쓴 적이 없으며 실제로는 자신이 카지노에서 쓸 현금을 마련하느라 카드깡을 했다는 것이다. 최씨는 유씨의 고교 후배다.
-최씨 진술의 진위를 떠나 검찰 수사를 받던 기업의 홍보실장과 해외 골프여행을 함께한 건 검사로서 부적절한 처신 아닌가.
“여행 약속은 KTF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 이뤄졌다. 경비는 각자 댔는데, 유씨가 임의로 비행기 좌석과 호텔을 고가로 예약하는 바람에 돈을 조금 더 썼다. 그리고 여행할 무렵엔 KTF 수사가 끝난 상태였다.”
김 전 검사에 대한 수사는 다단계 사기꾼 조희팔에 대한 경찰 수사에서 비롯됐다. 조희팔을 수사하던 중 측근 강태용 씨의 돈이 김 전 검사의 차명계좌로 입금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경찰 수사내용이 알려지자 검찰이 특임검사를 임명해 별도 수사에 나섰다. 결국 김 전 검사가 검찰로 출두함에 따라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당시 경찰 조사를 거부하고 검찰로 출석한 이유는? 홍만표 변호사의 조언을 받은 게 사실인가.
“당시 판․검사 출신 변호사 10여 명과 상의했는데, 의견이 반반이었다. 내가 영장실질심사를 거부하려 하자 홍 변호사는 검찰 체면 살려주라면서 출석을 권유했다.”
-홍 변호사는 수백억대 수임료 수익에 대한 탈세 혐의로 구속됐다. 홍 변호사와 어떤 사이였나. 당신이 아는 홍 변호사는 어떤 사람인가.
“1994년 서울지검 의정부지청 특수부에서 같이 근무하면서 거의 매일같이 어울리고 가족끼리 놀러갈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홍 변호사는 처세술이 뛰어나고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다.”
-2012년 11월 특임검사팀 이모 검사가 불법 압수수색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일요일인 11월 11일 서울고등검찰청 내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판례에 따르면 ‘급속을 요하는 때’가 아니면 압수수색을 할 때는 피의자에게 미리 통지하고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 또 압수조서를 작성하고 압수목록을 소유자에게 교부하지 않으면 불법이다. 그런데 이 검사는 내게 전혀 알리지 않았고 압수조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압수목록도 교부하지 않았다. 불법적 압수수색으로 수집한 증거를 근거로 한 판결은 재심 대상이다.”
그는 또 검찰의 강압적 가택수사가 말기암 환자이던 부인의 병세를 악화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배OO 검사가 시도 때도 없이 아내에게 전화해 소환조사를 받으라고 종용해 노이로제 증상을 일으켰다. 아들이 대학입시 논술시험을 앞두고 과외를 받던 날 ‘30분만 기다려달라’는 아내의 요청을 묵살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조사를 벌였다. 이후 아내는 병세가 급속히 악화돼 입원했다. 몇 번 수술을 받고 몇 달 후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런데 아내에 대한 조서를 법원에 제출하지도 않았다. 그것을 누가 손괴했는지 밝혀달라고 진정했는데, 묵살 당했다.”
-수사검사들이 불법을 저질렀다며 고소했는데, 그 결과는?
“직무범위에 관한 검찰예규 문구 조작과 관련해 허위공문서 작성 등으로 고소했는데 검찰은 아무런 조사 없이 각하 처분했다.”
-당시 한상대 검찰총장의 태도는 어땠나.
“처음엔 총장의 지침대로 감찰본부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며칠 뒤 총장의 태도가 돌변했다. 특임검사를 임명하고 검사 13명을 투입해 사돈의 팔촌까지 뒤지게 했다. 공소유지가 되든 안 되든 무조건 기소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김수창 당시 특임검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나.
“검찰 예규를 조작해 공소장에 허위사실을 기재한 사람이 누구인지 묻고 싶다. 공무원이 허위공문서를 작성할 때는 목을 걸어야 한다. 그 사연이 뭔지 궁금하다.”
-지금 검찰은 진경준 검사장의 뇌물사건으로 시끄럽다. 진 검사장과 당신의 행위는 어떻게 다른가.
“친한 사람으로부터 특정 사건과 관계없이 금품을 받은 건 비슷하다. 다만 나는 차용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본다. 그래서 재심을 청구하는 것이고.”
-검찰의 불법 수사와 과잉수사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데, 돌이켜보면 당신은 그런 식으로 수사해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거나 누군가에게 한을 품게 한 적이 없나.
“억울한 피해자는 몰라도 한을 품은 사람은 있었을 듯싶다. 1996년 서울지검 특수1부 검사 시절 일과가 끝난 저녁시간에 검사장으로부터 OO은행 전무가 대출 관련 커미션을 받았으니 즉시 수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곧바로 대전에 내려가 돈 준 의사의 자백을 확보하고 다음날 아침 OO은행 전무를 데려와 구속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틀 뒤 그 은행 사장 선거가 있었다. 입후보했던 그 전무가 갑자기 구속되는 바람에 다른 사람이 사장으로 선출됐다. 한마디로 충실한 사냥개 노릇을 했던 거다.”
-한때 최고의 특수통 검사로 인정받다가 ‘뇌물검사’의 오명을 쓰고 수감자 신분이 됐다. 수사와 재판의 잘잘못을 떠나 회한이 클 것 같다. 무엇이 가장 후회스럽나.
“수신(修身)을 제대로 못한 점이다. 열심히 일하는 조직의 후배들, 직원들한테 미안하다.”
-출소하면 어떤 일을 하고 싶나.
“정말 억울한 사람을 구해주는 무료 로펌을 만들고 싶다.”
-끝으로 가족을 비롯해 가까운 사람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그리고 김 전 검사 때문에 검찰에 등 돌린 국민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다 내가 자초한 일인데 억울하다 해도 무슨 할 말이 있겠나. 하지만 검사 대부분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들이 바로 서야 국가가 바로 선다. 따뜻한 눈으로 봐주면 좋겠다.”
그는 지인을 통해 추가로 보내온 글에서 좀 더 절절한 반성의 심경을 드러냈다.
“저는 본의 아니게 친정 격인 검찰에 누를 끼치고 국민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3년8개월간 반성하고 후회하면서 지냈습니다. 제가 공직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범죄를 단죄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부적절한 여자관계를 갖고 이에 대해 책임지고 공직에서 물러나야 함에도 금전으로 무마하려다 공무원으로서는 과다하다고 생각될 정도의 금전을 차용하는 등 부적절한 처신을 한 점 등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2012년 특임검사로 임명돼 김광준 검사를 구속했던 김수창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 전 검사의 주장에 대해 “말이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검찰이 과잉수사를 벌였다는 김광준 전 검사의 주장에 일리가 없나. “당연히 일리가 없다. 있는 그대로 수사한 거다. 전 국민이 주목하고 언론이 주시한 사건이었다. 검사들에게 ‘나오는 대로 수사하라’고 당부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세게 수사한 것 같다. “심한 게 아니라 철저히 수사한 거다.”
-김 전 검사가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재심 청구 사유 중 하나가 당시 수사팀의 불법 압수수색이다. 불법적 수사로 수집한 증거는 무효라고 주장한다. “말이 안 된다. 검사들에게 절대 법과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배모 검사의 강압적 가택조사로 김 전 검사 부인의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서 사망했다는데. “그 분을 꼭 조사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말기암 환자라 해서 무척 조심스럽게 대했다. 그 분의 마지막 소원이 남편과 밥 한 번 먹는 것이었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검찰청에서 김 검사를 면회한 후 같이 식사하게 배려했다. 우리한테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안 된다.”
-김 전 검사는 부인의 진술서가 남아 있지 않다며 검사들을 공문서 은닉 및 손괴죄로 처벌해달라는 진정을 넣었다. “진술서가 왜 없나. 일방적 주장이다. 조서를 안 남긴다는 게 말이 되나.”
-김 전 검사가 속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의 직무 범위에 관한 예규를 조작했나. “대검에서 이미 조사해 종결한 사안이다. 그걸 나한테 또 묻는 건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다.”
-공소장 문구에 문제가 없었나. “오래 돼서 다 기억하지 못하겠다. 대검에서 문제없다고 했으니 지금껏 문제가 안 된 것 아닌가.”
▶ 한상대 전 검찰총장 “김광준 주장은 소설”
2012년 12월 3일 한상대 검찰총장은 임기를 8개월 남기고 사임했다. 김광준 검사가 구속된 지 2주 후였다.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문제로 후배 검사들과 충돌한 것이 사퇴의 배경이었다.
김 전 검사는 당시 한 총장이 감찰 후 징계로 옷을 벗기겠다고 약속해놓고 특임검사를 임명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 전 총장은 “소설”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게 감찰로 끝낼 일이었나. 경찰도 다 아는데. 김광준이 당시 최재경 중수부장과 친구지간이었다. 두 사람 간에 그런 얘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모르는 일이다. 김광준이 (형을) 많이 받긴 했다. 얼마나 힘들겠나.”
▶ 황운하 경찰대 교수부장 “김광준은 애초 수사 타깃 아니었다”
경찰대 교수부장 황운하 경무관은 김광준 사건 당시 경찰청 수사기획관으로 주요 수사를 지휘했다.
-김광준 전 검사에 대한 경찰 수사는 어떻게 시작된 건가. “김광준 검사는 애초 수사 타깃이 아니었다. 경찰이 조희팔의 은닉자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튀어나온 거다. 김 검사가 차명계좌를 이용해 돈을 받은 사실을 확인한 후 그의 주변을 내사했다.”
-차명계좌라는 사실은 어떻게 확인했나. “김 검사에게 계좌를 빌려준 사람을 조사해 확인했다.”
-김 전 검사는 경찰이 피의사실을 공표했다고 주장한다. “엉뚱한 얘기다. SBS가 첫 보도를 했는데, 우리는 보도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다. 검찰 쪽에서 새어나간 것으로 안다.”
-유진그룹 관련 내용도 다 파악했나. “계좌추적을 통해 유진그룹 돈이 김광준 검사에게 건네진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검찰이 사건을 가로채는 바람에 더는 수사할 수 없었다. 다만 돈 받은 시기를 감안하면, 유진 쪽에서 받은 돈이나 강태용에게 받은 돈이나 직무 관련 대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김 전 검사의 휴대전화를 조회했나. “사건번호 따서 정식으로 영장 청구해 확인했다.”
황 경무관은 김 전 검사의 재심 청구에 대해 “법원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전 검사는 당시 경찰 조사를 안 받고 검찰로 간 것에 대해 이제와 후회하는 듯싶다. “특임검사 팀은 사건을 말아먹으려고 경찰 수사를 가로챈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 열심히 수사했다. 아마 경찰이 수사했어도 그 이상 밝혀내지 못했을 것이다. 재심 주장은 가치 없어 보인다. 차용금이라고 주장하지만, 검사가 아니라면 그런 큰 돈을 순순히 줬겠나. 다만 특수부장을 지내고 검사장 직전까지 갔던 사람이 검찰 수사를 비난하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검찰이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없는 죄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니까. 김광준이 정말 억울하다면 검찰의 잘못이다. 경찰은 수사가 중단됐으니.”
▶ 김수남 검찰총장 ‘무응답’
김광준 전 검사는 2008년 5월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시절 내연녀 김모 씨로부터 “2억 원을 주지 않으면 불륜관계를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사의를 표명했다. 당시 직속상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김수남 현 검찰총장이다. 대검 대변인실을 통해 김 총장에게 이와 관련된 질문지를 보냈으나 그는 답변을 해오지 않았다.
▶ 명동성 전 서울중앙지검장 “사표 만류했으나 여자문제는 몰랐다”
2008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김 전 검사의 사직을 만류했다는 명동성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는 다음 답변을 보내왔다. “정확한 일시는 기억나지 않으나 중앙지검이 큰 사건 수사로 정신없을 때 특수3부장이 그만두려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조직으로부터 배려를 받고 중임을 맡은 사람이 함부로 가볍게 행동하지 말고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해 달라고 질책 및 부탁을 한 일은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 당시 구체적 대화내용은 기억할 수 없으니 질문사항과 같은 여자 문제나 금전거래 관계 등은 알지 못하는 내용입니다.”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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